아침을 열며-유럽
아침을 열며-유럽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0 16:0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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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유럽

“철학은 프리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듯한 백색광선이 프리즘을 통과하면서 그 속에 숨어 있던 7색 무지개를 드러내 보여주듯이, 철학도 너무나 흔하고 가깝고 당연해서 하찮게 여기던 것의 숨은 가치를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베이징의 어느 모임에서 특강을 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그런 점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이 ‘철학’이라는 학문을 높이 평가한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보통 가깝고 흔한 것들에 대해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코 지나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부모가 그렇고 자식이 그렇고 부부가 그렇고 친구도 그렇다. 지수화풍도 그렇고 화조초목도 그렇다. 그런데 그런 것들 중에 정말로 중요한 것들이 많다. 우리의 신체도 그렇고 건강도 그렇고, 좀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존재’자체도 그렇고 심지어 ‘무의 존재’도 그렇다. 철학은 그런 것들의 가치를 새삼 인식하게 만들어준다.

특강을 마치고 지하철로 집으로 돌아오다가 문득 맞은편에 앉은 한 젊은 여성의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루이뷔통’이었다. 조금 전의 모임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요즘 중국에서는 2/30대 여성들도 그런 걸 구입하는 데는 주저가 없다고 한 여성 참석자가 알려줬다. 그걸 보고 느닷없이 ‘유럽’이라는 게 머릿속인지 가슴속인지 그 어디선가 ‘반짝’하는 게 느껴졌다. “그렇구나, 유럽은 여기에도 이렇게 스며들어 있구나….” 뭘 그런 당연한 걸 새삼스럽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사실 이게 보통일이 아니다. 여긴 중국의 심장부 베이징이 아닌가. 중국은 오랜 세월 이른바 동양세계의 중심이 아니었던가. 그 중국이 지금 ‘한’도 ‘당’도 ‘명’도 ‘청’도 아닌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어 있는데, 그 ‘인민’과 ‘공화국’이란 개념이, 또 그것이 표방하는 ‘공산주의’가 다 저 유럽철학의 개념들이 아니었던가. 이 나라의 국체에 플라톤과 마르크스가 떡하니 버티고 있는 것이다. 루이뷔통도 그렇게 알게 모르게 공기처럼 물처럼 이곳 동양세계에 스며든 ‘유럽’의 한 상징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유럽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 그걸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느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른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전 세계가 ‘서구화’(유럽화)의 길을 걸어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근대 이후 저들이 세계사의 흐름을 좌우해온 것이다. 저들의 제국주의-침략주의를 도덕적으로 따지는 건 이제 거의 무의미하다. 모든 게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역사와 현실이 되어 있다. 지금은 미국의 시대라고들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미국은 영국의 연장이며 따라서 유럽에 속한다. 러시아도 스스로를 유럽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심지어 터키까지도 유럽의 일부임을 표방하고 또 심지어는 아시아에서 일찌감치 선진국에 진입한 일본까지도 한때 ‘탈아입구’(脫亜入欧: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에 들어가자)를 기치로 내걸었었다. 그들의 성공은 상당부분 그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 유럽인들이 과학과 기술과 산업을 발전시켜 오늘날의 세계를, 이 시대를 건설한 것이다. 그 배경에 저들의 철학이 있었고 저들의 종교인 기독교가 있었다. 응? 기독교는 유대인의 종교가 아니었나?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 기독교가 오늘날의 기독교가 된 것은 사실상 로마의 국교가 된 덕분이었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이후 2000년, 우리는 기독교가 유럽의 종교였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알면 알수록 속속들이 보통 사람들이 아니다. 한국도 중국도 일본도 철저하게 유럽화 되어 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보이지 않는 의식 속까지 다 유럽화되어 있다. 베이징 지하철의 루이뷔통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의 헤어스타일과 복장과 구두가, 그리고 법과 제도가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왜일까? 도대체 저들에게는 ‘어떤’ ‘무엇’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저들의 그 ‘질’과 ‘격’과 ‘급’과 ‘수준’을, 특히 그 핵심에 있는 ‘이성’이라는 것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 된다. 전세계의 유럽화라는 이 거대한 역사적 사건은 그저 무지막지한 무력만으로 이루어진 게 절대 아니다. 무력은 과거 몽골이 더 막강했지만 전 세계가 몽골화되지는 않았다.

때마침 유럽의 심장부에 있는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이 화재로 불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전세계가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유럽을 향한 세계의 그 시선을 바라보는 하나의 ‘메타시선’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그 로마를 계승한 “유럽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대학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하고 싶었던 ‘중국철학’ 대신 ‘유럽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했었다. 나는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만일 발전을 바란다면 미-러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유럽’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럽의 세계 진출에 하나의 답이 있다. 나는 저들을 ‘질적인 고급’으로 평가한다. 루이뷔통과 샤넬, 에르메스와 구찌뿐만이 아니다. 소크라테스, 칸트, 셰익스피어, 릴케, 고흐, 르누아르, 모차르트, 쇼팽…이 이름들을 듣고 누가 그것을 부인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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