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기도하는 손독일의 화가이며 조각가인 뒤러(Albercht Durer)는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반에 걸쳐 소묘 900점, 목판화 350점 등 많은 작품을 남겼고 훌륭한 작품도 많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손꼽히는 대표작은 현재 뉘른베르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도하는 손〉이란 그림이다. 이 작품에는 사랑과 믿음의 기도에 관한 눈물겨운 우정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림공부에 뜻을 두고 있었으나 너무 가난해서 공부를 할 수 없었던 뒤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한 친구와 약속을 했다. 한 사람이 그림공부를 하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노동을 해서 학비를 부담하기로 했던 것이다.
뒤러가 먼저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정도 명성을 얻게 되자 이제는 친구를 공부시키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갔다. 친구는 마침 기도 중이었고 뒤러가 몰래 들은 그 기도는 이러했다. “하나님, 저는 심한 노동으로 손이 굳어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내 친구 뒤러만은 화가로서 성공하게 해주십시오” 뒤러는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연필을 꺼내 친구의 기도하는 손을 스케치했다. 이것이 불후의 명작 〈기도하는 손〉이다. 친구를 위한 희생과 진실한 기도의 힘이 이 명작을 있게 한 것이다. 응답받는 기도, 참된 기도는 이처럼 간절한 진실성에 의거해 있는 것이 아닐까?
어느 종교이거나를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에는 절대자에게 드리는 기도가 응답되어 현실의 난관을 극복하고 새로운 축복의 길로 들어선 사례가 많다. 이때의 기도는 기도드리는 이가 주체가 되어 그 자신이 무엇을 이루는 것이 아니다. 유한한 인간의 힘을 인식하고 동시에 원초적으로 인간이 가진 죄성(罪性)을 각성하여, 신의 자비를 구하는 관계성이 분명해야 기도다운 기도다. 이는 곧 신 앞에서의 겸손과 자기성찰을 동시에 수행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교만한 자, 목이 곧은 자의 기도가 응답될 리 없다.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과제가 해결된다는 것과 다르며, 전 생애를 관통하는 유다른 신성체험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통과의례에 해당한다. 이 역사(役事)를 가능하게 하는 추동력의 정점이 곧 신의 자리다. 종교를 성립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처음이 신의 신성에 대한 신뢰인데, 이는 신의 섭리를 제외하고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현실주의 정치가요 사상가인 공자의 학문을 계보로 이어받고 있는 유학은, 조선조 오백년을 지배한 정신적 도그마였고 유교라는 호명을 쓰고 있으나 이를 종교로 보지 않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정말 기도를 필요로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느 한 분야에서도 화해롭고 조화로운 대목이 없다. 어쩌다가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기실 그러한 현상보다 더 심각한 것은, 당대의 국가 지도자들이 사태의 질곡을 이해하거나 그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기 편리한대로 해석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길이 끝난 곳에 신의 길이 있다면 이제는 기도만이 최후의 방략인 시점이다. 무엇을 위해 먼저 기도해야 할까. 하도 난제가 많아 그 순서의 정립부터 제목으로 두고 기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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