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눈(目)이야기
칼럼-눈(目)이야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1 15:2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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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눈(目)이야기

6·25동란 때 미군을 처음 보았을 때 큰 코에 파란 눈이 참 이상했다. ‘양코’, ‘벽안(碧眼)’이라는 말도 이때 생긴 것 같다. 그런데 그 ‘파란 눈’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 로욜라대학 연구팀에 의하면 20세기 초까지는 절반의 미국인이 파란 눈이었으나, 현재는 전체 인구의 1/6로 줄었다고 한다. 연구팀은 다인종 간의 결혼으로 열성 유전자인 파란 눈이 감소하고, 갈색 눈이 증가했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광고모델도 갈색 피부, 갈색 모발, 갈색 눈동자의 소유자를 선호하고, 갈색 콘택트렌즈 판매량도 대폭 늘어나는 추세라 한다. 파란 눈은 멜라닌 색소의 부족이 원인으로 지적돼 왔다. 눈은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으로 여겨진다. 성경에서도 눈은 ‘몸의 등불’, ‘마음의 등불’로 칭송되고, 맹자(孟子)도 ‘사람을 알아보는 데는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다. 눈동자는 그 악함을 덮지 못한다. 흉중(胸中 마음, 생각)이 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흉중이 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어둡다’고 했다. 아기는 흉중이 바르고 맑기 때문에 아기의 눈동자는 사랑과 평화, 곧 천사의 증표라고 한다.

192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일랜드의 시인 예이츠(1865~1939)는 ‘술은 입으로 들고, 사랑은 눈으로 든다’고 노래했다. 첫눈에 든 사랑일수록 더 뜨겁게 타오른다. 사랑에 눈이 멀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밖에 안 보이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알제리 태생의 프랑스 철학자 쟈크 데리다(1930~2004)는 ‘눈은 보는 것이 아니라, 눈물이 본질이라고 했다’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했던가! 보는 눈은 모든 탐욕의 원천인 악한 눈이고, 눈물을 흘리는 눈이 선한 눈이라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만이 눈물을 흘린다. 눈물은 생리학적으로 눈을 보호하는 살균제 역할을 하지만 정서적으로 슬픔의 상징이다. 영국의 소설가 D·H·로렌스(1885~1930)는 ‘눈물은 위대한 통역관’이라고 명명했다. 눈물 앞에서 인간의 언어는 무용지물이 된다.

외부 자극에 의한 눈물과 슬픔의 눈물을 화학적으로 분석해 본 결과…단백질 함량이 달랐다는 보고도 있고, 인간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최초의 인류조상이 수중(水中)생활단계에서 진화한 것이라는 학설도 있다. 실제로 인간은 모태 속 양수(羊水)에서 살다가 태어난다. 어쨌거나 인간의 삶은 울음으로 시작되고 눈을 감음으로써 끝난다.

‘울고 있는 아이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독일의 시인 안톤 슈낙(1892~1973)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첫 문장이다. 굶주림에 우는 아이들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 눈물은 인간본성인 휴머니즘의 샘물이다. 인간은 눈의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안경·현미경·망원경·X-레이·CT·MRI·폐쇄회로·감시카메라·내비게이션·레이더 등 각종 기기들까지 만들었다. 스스로 목표물을 찾아가 명중시키는 미사일의 ‘전자 눈’도 있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사상가 세네카(BC4~AD65)는 시력이 약해 물을 공 모양으로 확대시켜 안경의 원리로 왕성한 독서생활을 했다고 한다.

옛 중국의 양일(楊逸)이라는 광주자사(光州刺史)는 민심을 꿰뚫고 선정을 베풀어 ‘천리안(千里眼)’이라는 고사를 만들었고,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중국 삼국시대 완적(阮籍 210~263)은 못된 선비를 맞으면 눈의 흰자위만을 드러냈다 하여 ‘백안시(白眼視)’의 원조가 되었다. 뿐인가, 눈을 그리지 않은 용(龍) 그림에 눈동자를 그려 넣었더니, 그만 용이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의 고사성어도 있다. 눈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얘기이다. 신화 속 예언의 신은 실명(失明)의 대가로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지(叡智)의 눈을 얻었다. 점쟁이들이 대부분 장님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 유명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주인공은 근친상간(近親相姦)의 죄업으로 스스로 눈을 빼 버리게 된다. 공작은 왜 눈동자 무늬가 있는 깃이 현란할까? 신의 제왕인 제우스는 평소 정사(情事)를 즐겨 항상 아내 여신 헤라의 감시를 받았는데, 그 감시자로 백 개의 눈을 가진 아르고스를 채용했지만, 제우스가 밀사를 보내 그를 죽이자, 이를 가엾이 여긴 헤라가 자신의 상징인 공작의 깃마다 백 개의 눈을 옮겨 놓았기 때문이다. 한쪽 눈만 감으면 사랑의 윙크가 되지만, 너무 오래 감고 있으면 사격의 자세가 된다. 우리 모두는 현실의 목격자다. 두 눈을 밝혀 뜨고 역사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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