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탈북자는 앞으로 모두 추방되는가
시론-탈북자는 앞으로 모두 추방되는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3 16:2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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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
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탈북자는 앞으로 모두 추방되는가

정부가 처음으로 북한 주민을 강제 추방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월 15일 함경북도 김책항에서 출항한 길이 15m 17t급 소형 목선에서 선장 등의 가혹행위에 불만을 품은 선원 3명이 16명을 살해했다. 이들은 어획물을 팔기위해 1명이 하선했다가 붙잡히자 2명이 배를 돌려 남하했고, 11월 2일 우리 해군에 나포되었다. 북한이 송환을 요구하자, 정부는 7일 이들에게 안대를 씌우고 포박한 채 판문점으로 호송하여 추방했다. 선박도 8일 인계했다. 정부의 이 조치는 매우 부적절하고 심지어 불법이다.

첫째, 헌법과 법률에 따라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북한이탈주민이라면 국민으로 수용해 왔다. 물론 당사자가 자의로 돌아가길 원하면 송환될 수 있다. 강제북송 논란이 일어나자 통일부 장관은 이들이 “죽더라도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진술했다고 말했지만, “귀순하겠다”는 자필 서류를 작성했다고 한다. 통일부는 흉악범죄자를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땅에서 우리 국민은 ‘난민’도 ‘망명자’도 아니다.

둘째, 인권 침해다. 정부의 조치는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다. 안대를 벗은 이들이 판문점에서 북한군을 발견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고 한다. 북한으로 가면 가혹한 고문 끝에 사형 당하게 된다. 통일부는 “살인 등 비정치적 범죄자는 북한이탈주민법상 보호대상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 법률은 수용·추방에 관한 것이 아니다. 보호대상이라면 법이 정한 혜택을 주고, 보호대상이 아니면 주민등록증만 발급한다는 것이다. 과거에도 범법자로 판명된 탈북자 9명에게 주민증만 발급한 사례가 있었다. 유엔 북한인권보고서는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중대한 인권위반 사례로 꼽고 있다. 내국인은 ‘추방당하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 ‘주민의 강제 추방’은 세계인권선언과 국제형사재판소 로마규정, 그리고 우리 국내법의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된다.

셋째, 사법관할권은 우리에게 있다. 통일부는 “재판관할권이 없다”고 말했지만, 속인주의로도 속지주의로도 우리 관할이다. 법률적으로 북한 정권은 국가를 참칭한 반국가단체이며 남북한관계는 ‘민족 내부의 특수관계’이다.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고 있는 국제관계에서도 다른 국가의 요구에 일방적으로 순응하지 않는다. 외국의 범죄인 인도 요구는 외교부를 통해 법무부에 전달되고 법원의 인도 여부 결정에 따라 시행된다. 이번 조치는 사법주권의 포기라는 비판을 피할 길이 없다.

넷째, 무죄 추정의 원칙 위반이다. 정부는 “혈흔이나 DNA 감식 같은 포렌식을 거치지 않았다” 현장조사도 하지 않은 채 범죄를 단정했다. 혐의 사실은 법정에서 가려져야 한다. “범죄사실의 인정은 합리적인 의심이 없는 정도의 증명에 이르러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의 원칙은 지켜져야만 한다. 더구나 정부는 증거 불충분으로 국내에서 처벌할 수 없어 추방했다는 말도 했다. 사형제가 사실상 폐지된 우리 대신에 북한측에 대집행 의뢰라도 한 듯한 표현이다.

다섯째, 북한에서 탈북자는 범법자이기에, 앞으로 북한은 모든 탈북자의 강제송환을 요구할 수 있다. 없는 죄를 거짓으로 꾸밀 수도 있다. 우리 정부가 북한의 요구에만 순응하는 것은 끔찍한 상황이다. 어쩌면 이번이 전례가 되어, 이미 국내에 들어와 있는 북한이탈주민의 강제추방을 요구할지 모른다.

인권을 중시한다는 문재인정부는 왜 북한 인권에 침묵하는가. 왜 헌법상 우리 국민에 대한 사법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가. 앞으로 모든 탈북자를 추방할 생각인가. 이번 조치는 명백한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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