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미국
아침을 열며-미국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17 15:4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방문교수-미국

베이징에 와서 지내다보니 처음엔 잘 몰랐는데 좀 익숙해지면서 몇 가지 불편이 느껴졌다. 그 중 하나, 당연한 듯 사용하던 구글, 지메일, 유튜브, 페이스북, 등 인터넷 관련 서비스들이 차단되어 이용이 안 되는 것이다. 사용하던 건 아니지만 주변에서 온통 화제인 넷플릭스도 접속해 보려니 역시 안 되었다. 뭐든지 못하게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게 사람의 심리다. 유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다들 VPN이라는 앱을 써서 우회접속을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만주 여행을 할 때 가이드가 중국의 1자녀 산아제한 정책을 설명하며 “정부에 정책이라는 게 있으면 인민에게는 대책이라는 게 있다”며 사실상 다자녀를 갖는 비결을 재미있게 설명해주던 게 생각났다. 나도 그렇게 우회해서 접속을 시도해봤다. 번역기를 비롯해 다시 만난 화면들이 반가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다 ‘미국’의 것이었다. 미국이 얼마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한 계기가 되었다. 미국의 위상과 실력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세상 누구나가 다 인정한다. 소련이 해체된 후, 압도적인 G1인 것이다. 중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들도 그건 인정한다. 사사건건 대립적이면서도 묘하게 미국에 대한 선망은 도처에서 느껴진다. 길거리를 다니는 남녀노소의 패션을 봐도 모자엔 NY나 LA의 글자가 버젓이 있고, 나이키, 플레이보이가 예사로 있고, 좀 예전 거지만 드라마에도 우리나라처럼 걸핏하면 미국으로 가는 게 무슨 해결책인양 등장한다. 듣자하니 이곳 거부나 간부들의 자녀는 상당수가 미국에 유학을 하며, 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가능하면 현지에 눌러앉을 것을 권한다고 한다. 중국인의 미국 원정출산도 한때 논란이 되었었다. 그 반대의 중국선망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에 접한 한 기사에서는 중국 100만장자 중 해외로 이주한 사람이 1만 5천명으로 세계1위라고 했다.

인종차별 총기난사 등등 숱한 문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는 미국의 이 인기비결은 무엇일까. 아마 각자 나름의 ‘미국론’들이 한도 끝도 없이 나오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저들의 ‘휴머니즘’을 그 핵심의 하나로 생각한다. ‘인간’의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이다. 그것은 저들의 기원이기도 한 ‘청교도’ 정신과도 연결돼 있다. 거기에 그 인간의 ‘능력’과 ‘성취’에 대한 인정도 보태져 있고, 그리고 ‘합리’와 ‘정의’에 대한 지향도 보태져 있다. 알게 모르게 사회의 근간에서, 혹은 공기 속에서, 그게 살아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한 것이다. (그 꿈은 이른바 ‘중국몽’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른 것이다. “나에겐 꿈이 하나 있다”고 한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꿈, 그런 휴머니즘적인 꿈이다.) 나는 비록 짧은 1년간이지만 보스턴에 거주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로 그걸 실감했었다. 특히 예전의 인기 드라마였던 ‘초원의 작은 집’과 ‘월튼네 가족’은 지금도 전문채널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데, 그런 이야기에서 그 살아있는 정신을 읽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사람’이 다르고 ‘정신’이 다른 것이다. 그런 다름이 격차를 만든다고 나는 믿는 편이다. 그런 ‘정신’ ‘의식’ ‘생각’은 한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알게 모르게 ‘만들어진다’. 특히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모두 다 핵심적인 교육의 채널들이다. 그게 ‘사회적 공기’를 형성해서 인간의 정신에게 호흡되는 것이다. 그 공기의 색깔에 따라 인간의 정신은 물이 든다. 빨갛게 혹은 파랗게.

미국인들에게는 어쨌거나 아직도 ‘건전한 가치’라는 것이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 움직인다. 논리(합리)적인 가치, 윤리적인 가치, 미학적인 가치들이. 그런 게 종합적으로 작용해 ‘수준’과 ‘질’과 ‘격’과 ‘급’을, 즉 ‘고급’을 이루어낸다. 애플도, 구글도, 페북도, 유튜브도 넷플릭스도 다 그런 결과물들인 것이다. 디즈니도 아마존도 또 우리가 아는 이것도 저것도 다 그런 결과물들인 것이다. 최고는, 제일은, G1은, 결코 어쩌다가 얻을 수 있는 그런 것이 절대 아니다. 일부 미국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 점을 진솔하게 들여다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런 ‘미국적인 가치’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우리는 진지하게 돌아보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정과 참고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