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안중근 의사 항일투쟁
진주성-안중근 의사 항일투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20 16:3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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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안중근 의사 항일투쟁

1909년 10월부터 서울과 지방 신문에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 상보(祥報)’라는 제목을 달아 안중근 의사의 기사를 실었다. 해당기사에는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이 상세히 보도되었다.

‘이등박문’이 암살을 당했는데 지난 10월 18일 중국 대련에 상륙해 만주일대를 순행하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9시에 수행원과 함께 하얼빈 역에 도착, 러시아 일본 양국 관민이 환영하는 가운데 러시아 대장대신과 20분간 담화한 후 문무 관리와 각국 환영 단체가 정렬한 가운데 보행하며 악수할 때 돌연히 폭음이 나고 3개의 탄환이 이등박문의 우측 배와 복부에 박혀 혼절하더니 일본 의사 2명이 달려와 치료했으나 30분 만에 절명하였다.

안 의사의 성명은 안응칠. 황해도 신천 출신 천주교인이라고 했다.

<안중근 공판서>라는 책은 1995년에 토향회(회장 김무조 교수)가 번역 발간했는데 안중근 의사의 공판기록이 실리고 변호사 선임. 형제 면회. 불란서 신부의 초청. 공소 포기. 사형집행 등 상세하게 등재했다.

이등박문에 대하여 안 의사는 대동공보와 원동보를 보고 알았고 현장에서 군복을 입지 않고 노인이라는 것에 바로 알았다고 진술했다.

진주 모 대학 교수가 1909년은 일제시대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하여 1905년 11월 17일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1907년 7월 정미7조약이 체결될 무렵에 고종 황제가 퇴위당하고 일국의 군대가 완전히 해산되어 방어권이 소멸되었으므로 실질적인 일제강점기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안중근 의사는 이등박문의 죄악상 15개를 열거했는데 중요한 죄악을 보면 첫째로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와 나라를 강제로 빼앗은 죄 등이다. 안중근 의사도 역시 나라를 빼앗은 죄라 하여 도장만 안 찍었을 뿐 사실상 일제강점기로 보고 의거를 감행했다.

모 교수가 모 신문에 일제강점기가 아닌데 러시아를 앞세워 러‧일이라 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일본보다 러시아가 덜 나쁘다는 인식의 표현이었고 <조선왕조실록>1904년 2월조 등에 보면 러‧일전쟁 즉 러시아를 앞세우고 일‧러라고 단어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1909년 관보에 보면 당시 진주경찰서장. 진주재판소 판사와 진주우체국장과 재무서 재무관‧주사가 일본인 이었다. 경남도 관찰사는 조선인 황철이었지만 사무관, 주사도 역시 일본인이 차지하고 있었다.

1910년 8월 29일 밤 12시부터 일제강점기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고 순진한 생각이다.

안중근 의사는 영원히 훌륭한 항일투사로 기억하고 기록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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