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당신은 어느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는가?
칼럼-당신은 어느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는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25 16: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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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당신은 어느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는가?


고스톱·훌라·파친코·골프·결혼·친구·애인·아버지·어머니·자식·악기·만남·떠남·헤어짐·꽃·낚시·등산·복권·불고기·진수성찬·아파트·여행·노래·눈·비·증권·수영·승용차·술·스포츠카·화장품·다이아몬드·산·섹스·바다·옷·돈·여자·주먹·자전거·정복자·독재자·살인마·운동·관광·여행·영화·연극·마라톤·축구·야구·배구·테니스·승전보(勝戰譜)·운동·카바레·태풍·천둥 번개·지진 등등…

골프하면 타이거 우즈, 고스톱 하면 화타, 노래하면 남인수·김정구·이난영·이미자·나훈아·조용필·BTS, 등산하면 고상돈·엄홍길·박정헌, 아파트하면 강남에 1124채나 자기 명의로 가지고 있는 역삼동의 어느 무속인·여행하면 60년대 세상을 놀라게 했던 김찬삼과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의 대명사 한비야, 주먹하면 무패의 전설 록키 마르시아노·무하마드 알리·타이슨·조지 포면·암흑가의 대부 알폰소 카포네·김두한, 마라톤하면 손기정·황영조, 정복자하면 칭기즈칸·알렉산더 대왕, 살인마하면 독일의 히틀러와 아이히만·중국의 진시황·400백만명을 학살한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폭군 하면 연산군·축구하면 펠레·유제비오·메시·호나우두·네이마르·베컴·차범근·히딩크·박지성·손흥민·이강인, 야구하면 최동원·박찬호·류현진 등이 가슴을 뛰게 한다.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효자의 자질은 없는 것이다. 기타·피아노·트럼펫·거문고·가야금·바이올린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음악가의 자질은 없는 것이다. 친구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인간적인 의리의 자질은 없는 것이다. 여자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플레이보이의 자질은 없는 것이다. 산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등산의 짜릿한 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다. 주먹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한때 놀아 보지 않았던 사람이다. 진수성찬이란 말에 귀가 솔깃하지 않으면 배가 고파본 절박함의 경험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것들을 들으면 가슴이 뛰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것들과는 아예 인연이 약한가 보다. 그러나 책이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 속에는 과연 어떤 신비한 감동들이 들어있을까? 한 권의 책과 맺는 인연을 생각해보면 거기에는 대인관계보다 더 인간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 많고 많은 책들 가운데 나와 인연이 되어 선택된다는 것. 나의서가(書架)에 꼽혀 있는 소크라테스·공자·셰익스피어·김소월·괴테·노자·맹자·고승들의 열전 들을 보면 가슴이 뛴다. 책과의 만남은 접촉감, 곧 손의 스킨십으로부터 시작된다. 한 권의 책을 손에 들었을 때, 제목, 두께, 지질, 크기, 무게, 특히 표지의 형태에서 전해지는 촉감은 성애(性愛)의 전희(前戱)에 해당하는 정서적 감응을 준다. 책 사랑은 도서관이나 서점이다.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묘비명은 ‘살고 쓰고 사랑했다’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작가로 대표작<적과 흑>을 남겼던 스탕달(1783~1842)인데, ‘책을 산다, 읽는다, 쓴다.’라는 일본의 저명한 한학자 오야나기 시게타(小柳司氣太 1870∼1940)의 명언도 압권이다.

책이 완성되는 곳은 제본소가 아니라, 바로 독자의 가슴속이다. 때문에 나는 늘 저자는 최초의 독자요, 독자는 마지막 저자라고 생각한다. 뛰어난 최초의 독자와 훌륭한 마지막 저자와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사랑이 탄생한다. 책도 독자를 잘 만나야 한다. 나는 50대 초반부터 일 년에 꼭 100권이상의 책을 읽어야 하겠다는 목표를 정해 놓고 지금까지 실천해 오고 있다. 금년에는 10월 말 까지 110권의 책을 읽었으니 목표는 이미 돌파한 셈이다. 영국 소호에서 매춘부 생활을 했던 니키 로버트(1949~)라는 여자가 쓴 <역사 속의 매춘부들>이라는 책은 686쪽이나 되지만, 내가 가장 감동을 받은 것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헌사(獻辭 저자가 책을 써서 남에게 바치는 글)때문이다. ‘여고 시절, 나를 가리켜 구제불능이라고 했던 D선생님께도 이 책을 바친다. 당신 말이 옳았습니다’좋은 책을 읽고 났을 때는,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눈 뒤의 뿌듯함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풍요와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책을 읽어 나 자신을 풍요롭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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