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기록의 중요성
아침을 열며-기록의 중요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25 16:5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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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
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기록의 중요성

말을 사용한 의사소통 비중이 다른 수단에 비하면 매우 낮다고 한다. 그렇다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 사람들과 잘 되어야하지만 그것은 또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다. 말없이 상대의 감정이나 태도를 아는 정도에서의 소통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말과 몸이 다르게 표현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어려워진다. 말보다는 보다 원초적인 몸의 신호가 더 진실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세밀한 소통은 말을 통해서 가능하다. 최초의 통역사들이 어떻게 통역을 할 수 있었을지 때로는 궁금하기도 하다.

하나의 사실이 있을 뿐인데도 한 사건에 대해 해석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자기만의 입장에서 이익이 되는 지점을 고집하다보면 자신의 주관이 사실인양 굳어진다.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면 다투거나 자기주장만 앞세워 서로 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생활 속 다툼이 생기면 그 많은 증거와 증인을 어떻게 일일이 확보하랴?

기록의 중요성은 이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이해관계가 달라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 말의 효력이 휘발적인 관계로 기호나 표시가 필요했을 것이다. 글이 생기기전에 기호가 먼저 생겼을 것이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고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글을 아는 사람도 귀했지만 아무나 기록한다고 알아주는 것도 아니었고 소수 권력자들의 특권이었다. 권력자가 그렇다하면 일반사람들은 항변할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요즘의 블로그나 밴드, 카페에도 기록의 중요성은 간과할 수 없다. 엄밀히 왕권남용을 막는 왕권견제역할을 하는 제도로 보이나 기록하는 사관들이 객관적으로 적었을 테고 임금이 보거나 고치지 못하도록 하였다는 왕실의 기록 <승정원일기>, 임금이 승천한 후에 엮었다는 <조선왕조실록> 등 지금 돌아보면 기록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던 선조들이 자랑스럽다. 왕의 입장에서 일일이 감시(?)를 당하는지라 불편하고 책임감이 많이 무거웠을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에 <조선왕조실록>이 등재되었고 2001년 유네스코세계기록유산 제5차 국제재문회의에서 <직지심체요절>과 <승정원일기>가 등재되었다고 한다. 고치고 새롭게 바꾸어 나가야할 전통도 있겠지만 5~600년 전에도 우리나라는 꽤 앞선 나라였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일반인의 블로그와 청와대 블로그가 중요도에서 똑 같을 수는 없겠지만 일상을 꾸준히 기록한 사람의 일상의 기록이 그 사람의 역사가 된다. 자신의 삶을 늘 돌아보고 더 새롭게 성장하려는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개인적 성취도 이룰 테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결국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들어가 있기에 객관적인 자료가 되기는 힘들다하여도 말이다. 부지런하고 꾸준하게.

꿈을 위해 늘 준비하고 은근과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 이뤄내는 성과는 크다. 그 밑에는 운과 기회, 금전적 뒷받침 등 많은 조건들이 맞아떨어져야하겠지만. 부지런함과 꾸준함. 과거 그것만으로 성공할 기회가 있었지만 이제는 부족한 것인지? 어쩌면 젊은이들이 그것마저도 안하려드는 것인지? 연예인이 되려는 꿈을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졸업하고 현실적인 진로를 걱정하지만 교육환경의 틀이 정해져 있어서 자신을 알아가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대학을 가서도 대학졸업을 하고도 진로를 바꾸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가?

약자를 위한 성공의 기회는 이리도 귀한 것인지? 과거에는 개천에서도 용이 났다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들 한다. 교육을 통해 기회를 열어놓았다 하지만 취학 전 이미 사교육으로 인하여 같은 학년에서도 아이들의 격차가 이미 벌어진 상태로 경쟁을 시작한다. 지금은 전후 똑같이 가난하여 일어서려 힘을 모으고 그 안에서 경쟁하던 시대와는 분명 다르다. 어쩌면 자본주의사회에서 영원히 끊을 수 없는 격차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이 벌어들이는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내고 빈부의 격차를 좁혀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펴야할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힘이 빠지거나 허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희망의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지금의 언론은 미래의 젊은이들에게는 우리시대의 말이고 우리 의식의 역사가 된다. 한 가지 사실에 여러 해석으로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지만 그 안의 본질을 흐리지는 말았으면 한다. 시민들이 본질을 바로 보고 고민하고 토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인 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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