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겸손해지는 가을올해는 큰 태풍 피해보다 태풍의 간접 영향이 더 크다 할지라도 논바닥에 키대로 쓰러져 있는 벼를 볼 때마다 농사짓는 농부들 마음속까지 허탈한 한숨이 나오게 한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지칭하지만 자연 앞에 얼마나 비굴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인지 확인될 만큼 미미한 존재로 마음 자체의 생각마저 자꾸만 폭이 좁아진다.
좀 더 깊은 생각에 집착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초라하고 허황된 존재임을 생각을 할까 논바닥에 쓰러진 벼처럼 슬퍼진다. 일 년 내내 가꾸었던 정성과 사랑의 원죄를 생각하기보다 무한히 이해하고 용서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의 결정이 더 없이 감격스러워진다.
창문을 흔드는 가을 소리에 후다닥 잠에서 깨어 먼저 방문을 열어 보니 산언덕의
오색 단풍이 짙다. 어제 늦게 밭에서 따온 끝물 고추를 말리겠다고 장독대에 올려놓은 광주리가 가을바람에 날려 또 일손 바쁘게 쪼아댄다. 엊그제 흐른 날이 어느 순간 햇빛을 바라볼 아름다움이 가을바람에 따라 왔다가 갔다가 또 새로의 자리를 잡듯이 어제는 함께 밀려옴을 느끼는 순간, 오늘이 있다는 걸 어제는 몰랐다, 그러나 새삼 깨닫고는 얼른 툇돌로 내려섰다. 휙 스치는 바람이 옷깃으로 묻어오는 듯 찬 기운을 느껴 늦가을 바람이 분명했다.
소슬바람에 가을 차 마시는 여유를 반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가 싶다. 더구나 뒷담 넘어 숲에 왜가리 떼가 새끼를 까서 지저귐이 다가 다른 곳으로 떠난 후 다른 날과는 다르게 느끼는 만큼 언덕 밭모퉁이에 백색 구절초, 은빛 억새가 활짝 피어 그 몸짓에 나도 덩달아 어깨를 으쓱해 보고는 한 걸음집 밖으로 나섰다가 시골 길 걸음걸이가 온몸을 늘어지게 한다.
그 순간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는 순간 느닷없이 오던 길 가리켰다가 뺑소니치듯 달리기하는 이상한 행동에 호기심이 발동한 내 걸음이 천방지축 걸다가 방향을 읽는 늦가을 철 걸음으로 바뀐다.
농촌의 가을 풍경만은 집집마다 풍성하고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웃집은 구렁논에 잡은 미꾸라지로 추어탕을 준비하여 풍년을 자축한다고 몇 차례 기별이 오고 또 온다, 반대로 아랫방 찻방에 하객들이 마련한 ‘10월의 마지막 밤’자축연에 몸도 마음도 한바탕 찻자리를 읊는다.
가을 추어탕 맛은 인정하지만 어느 방법이든 생물의 몸을 난도질한 잔인성에 솟구치는 분노의 맛보다 가을의 작설차 한 잔 마시는 멋에 취하는 것도 불안한 시대에 새로의 가을 기운을 느끼는 것도 삶 본질의 감동이고 새 희망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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