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인과응보(因果應報)
칼럼-인과응보(因果應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26 14: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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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금인산 여래암 주지-인과응보(因果應報)

삶이란 내생(來生)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 과정이다. 모든 것은 다 변한다. 그러나 다 변한다하는 것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젊음과 건강도 영원히 유지되지 못하고 변해간다.

청년의 죽음은 뒤통수에 있고, 노인의 죽음은 이마에 있는 것도 아니다. 백회에서 보면 같은 거리다. 삶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는 과정이기에, 사는 동안 많은 선업을 쌓아야한다.

선업을 쌓으면 행복이오고, 악업을 쌓으면 불행이 오는 것도 정확한 인과응보이다.

인과응보는 아무도 피해갈 수 없다. 눈을 크게 뜨고, 마음을 활짝 열어서, 가난한 이에게는 베풀고, 배고픈 이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이에게는 입을 것을 나누어주자.

성공의 열쇠는 지금 자신의 발밑에 있다.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면 두려움도 없고, 눈앞에 닥친 일에서 도망갈 일도 없다.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최선을 다하며, 자신의 능력을 전소시켜나가자. 우물쭈물한 사람에게는 하루가 100시간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노력 없는 성공이란 있을 수가 없다. 촌음이라도 집중적으로 일하면서 살아가자.

현상에 휩쓸려서 근본원인을 놓치지 말자. 유명한 사람들은 엄청나게 큰일을 해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평소 자신이하는 작은 일들의 축적에서 점차로 유명해진 것이다.

앉아 놀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꾸준하게 일하면서,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으로 작은 선행이라도 계속 쌓아가자. 그러면 재앙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사람이나 사물을 대할 때도 진심으로 대하도록하자.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 함부로 말하고, 화를 내어 상대를 다치게 하지 말자. 결코 속이거나 허위로 대하지 말자.

진실한 마음에는 집착, 욕망, 공포, 절망이 없다. 자신의 내면을 수시로 점검해가면서, 타고난 환경과 약점, 결점을 탓하지 말고, 그런 것을 강점으로 승화시켜 나가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워진다. 내가 안다는 생각, 내가 옳다는 생각을 놔버리면 허상세계가 허물어진다. 인간은 ‘개별자’여서 서로를 대신해줄 수 없다.

환자를 간호는 해줄 수 있어도 대신 아파줄 수 없고, 죽을 때 임종은 해줄 수 있어도 대신 죽어줄 수도 없다. 그처럼, 신심(身心)의 번뇌도 그 사람을 대신 해줄 수 없다.

사람은 혼자는 외롭고 여럿은 피곤하다는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혼자서는 살수 없고, 여럿이 함께 살수도 없다. 혼자 있으면 남들과 함께 있고 싶어지고, 여럿이 함께 있으면 귀찮아진다. 그러한 이기심 때문에 이웃들과 정을 나누지 못하여 불행이 찾아온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저것 더 많은 것을 욕심 부리고 살면서, 죽음은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공수래공수거임을 알고, 하나라도 더 갖고자 가슴앓이하며 시시비비 속을 헤매지 말자.

선한 행위든 악한 행위든 행위에 대한 과보는 정확하게 따라오는 것이 인과응보다. 이것을 분명하게 알고 살면 천하가 태평하고 다툼도 없어, 편안한 마음이 된다. 그러면 재산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항상 즐겁게 살 수 있다. 인과를 알지 못하면 많은 죄업을 짓게 된다.

그러므로 첫째, 탐내지 말라. 모든 사람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간다’,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 편안한 마음이 되며, 그것으로 충분하다’둘째, 성내지 말라.

성을 내면 나와 남을 크게 해친다. 인욕에서 만이 지혜의 씨앗이 발현된다.

아침에 화를 내면 그동안 쌓은 공덕이 날아가고, 죽는 순간 화를 내면 일평생 쌓은 공덕이 날아가 버린다. 셋째 어리석지 말라. 진실과 거짓,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로움만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며, 어리석으면 탐욕이란 진흙탕 길로 빠져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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