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진주성-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1.27 16: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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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임시정부 2대 대통령 박은식

박은식(朴殷植)선생은 서당 훈장인 부친 박용호. 모친 노씨 슬하에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와 교유하였고 영향을 받았으며 안중근과 절친했다.

박은식(1859~1925년)선생은 박문호 형제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워 애국심을 키웠다.

1898년에 독립협회에 가입하고 남궁억, 장지연, 유근 등과 대한황성신문을 인수해 황성신문으로 바꾸고 주필이 되었다.

한성사범학교 교사가 되었고 1904년 7월 양기탁. 영국인 배설과 함께 대한매일신문 주필이 되었다.

1906년 4월에는 대한자강회에 참여해 자강회보 발행에 관여했다. <서우>라는 잡지를 발행해 애국교육진흥을 위해 애쓴 분이다.

1907년 1월 서북학회 회장으로서 서북학회지를 발간했다.

1907년 4월 양기탁, 안창호, 전덕기, 신채호 등과 신민회를 결성해 국권 회복운동. 국채보상운동을 전개했다.
서간도로 망명한 그는 윤세복 집에 거하면서 <동명성왕 실기>, < 발해태조 건국지>, <명림답부전>, <천개소문전>, <대동고사전> 등을 저술했다.

상해로 건너가 동제사에 동참하고 박달학원을 설립해 애국지사들을 키웠다. 1914년부터 <안의사중근전>과 <한국통사>를 간행했다.

1915년 3월 신한혁명당을 결성하고 1917년 7월 신규식, 조소앙 등과 대동단결을 선언하고 65세 강우규 의사를 파견해 사이토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케 했다.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을 발행케 하고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집필, 발간했다.

1924년 6월 이승만 대통령의 유고를 선언하고 국무총리 임시 대통령에 선출되었고 1925년 3월 상해 임시정부 2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대통령이 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물러나니 말리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해 온다.

상해에서 별세하자 국장으로 치르고 장안사에 모셨다.

1993년 8월 신규식, 노백린, 안태국, 김인전 등과 함께 고국으로 귀환해 국립현충원에 안장했다.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8월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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