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시론-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01 15:3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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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

‘악기의 왕’이라 불리는 파이프 오르간은 기원전 3세기 그리스에서부터 유래했다. 오늘날 웅장한 공공건물이나 규모가 큰 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 악기는, 소리가 엄숙하고 신비하여 특히 예배 분위기를 경건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러 개의 파이프 하나하나가 바람에 의하여 직접 울림으로써 각기 다른 음향을 낸다. 가장 낮은 소리에서 가장 높은 소리까지 그 음역이 광범위하다. 이 오르간은 만들어진 악기를 사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유형에 맞도록 주문제작을 한다. 그러기에 외형이 아름답고 건물의 내부와 잘 조화를 이룬다.

파이프 오르간의 기원은 역사가 오래지만 현재와 같이 대중화되기는 19세기 초반이 지나서다. 거기에는 이런 일화가 숨어 있다. 미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론 세버린(Ron Severin)이 주류 상회 앞을 지나다가 그 앞에 산적해 있는 헌 맥주 캔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주인을 만나 그 캔들을 자기가 치워 주겠다고 제의했다. 주인은 감사하다고, 그렇게 하라고 했다. 당시 세버린은 캘리포니아 롱비치 주립대학의 학생으로서 다우니 교회의 오르가니스트로 있었다. 헌 캔들이 줄지어 쌓여 있는 것을 보자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음악적 영감이 섬광처럼 그의 영혼을 흔들었던 것이다.

세버린은 한 아름의 캔을 자동차로 실어 와서 손질하기 시작했다. 위와 아래의 뚜껑을 모조리 따고 깨끗이 소독한 다음 긴 파이프가 되도록 납땜을 했다. 어떤 것은 길게, 어떤 것은 짧게 만들고 파이프의 주둥이 부분을 만들어 달았다. 그 파이프의 길이를 달리하여 플루트와 비올라의 소리가 나게 하는 데는 한 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으나 리이드의 음을 내는 데는 상당히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그는 3년의 세월을 투여하여 성능이 뛰어난 파이프 오르간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인류 역사에 새롭고 엄청난 악기 하나가 재탄생한 이야기다.

문제는 인간의 정신을 호활하게도 하지만 때로는 혼미하게 하는 술이 담겼던 그릇을, 아름답고 고상한 악기로 바꾸고 신을 찬양하며 경배하는 도구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참으로 평범하고 귀한 무엇인가를 되새기게 한다. 같은 물이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지만 양이 먹으면 젖이 된다는 교훈이다. 구약의 문면 가운데 삼손이 당나귀 턱뼈로 수많은 적군을 죽이는 사례가 있다. 하잘 것 없는 당나귀 턱뼈라도 그것이 무슨 일에 쓰이는가에 따라 역사적 사건의 중심에 설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론 세버린의 파이프 오르간은, 그 유래를 되새겨볼 때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가르침을 전해준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의 의미를 받아들여 우리 삶에 적용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소귀에 경 읽기가 아닐 수 없다. 이 대단한 악기의 등장 과정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그 높은 가격과 빛나는 치장을 자랑한다면 이는 존중받을 만한 태도가 아니다.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는 힘은 외형의 창대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고 진실한 마음, 그 진정성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평에 자리하고 있는 황순원문학촌 소나기마을에서 지난달 23일 ‘수숫단음악회’란 행사가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의 문학관이지만, 그 문학관은 국내에서 가장 많은 유료입장객이 찾아오는 성공한 테마파크다. 음악회에 출연한 여러 뮤지션과 연주자 가운데 한 젊은 피아니스트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핸디캡을 가지고 있으나 연주 역량은 가히 ‘천재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문학관 인근의 지역주민 여덟 분이 무대에 올라 배경음악에 맞추어 시낭송을 했다. 전문가가 아닌, 그저 문학관과 시와 노래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그 공연은 눈물겹도록 청신하고 감동적이었다. 그랬다. 작은 것이 더 아름다운 광경은 그처럼 우리 곁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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