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열며-증오의 정치
아침을열며-증오의 정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02 13: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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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증오의 정치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의 생존과 존재의의를 지키기 위하여 외부의 자극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어린 시절 좋은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외부의 자극에 비교적 관용적이며 자기표현과 관계 형성에 적극적이라 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방어적이며 사소한 자극에도 공격적 성향을 보인다고 한다. 과연 그러한 것인지는 보다 깊이 있게 조사 연구하여야 할 것이다.

어떻든 사람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나타나는 여러 일들에서 벗어나기 어렵고, 그 사이에서 스스로의 모습과 움직임을 가름 받아야 하기에 이를 일컬어 ‘인간(人間)’이라 한다. ‘사람’이라는 말에는 ‘홀로’의 뜻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면, ‘인간’이라는 개념에는 사람들과의 ‘관계(關係)’라는 무게가 더 짙게 스며있다.

인간은 태어날 때 가지고 나온 스스로의 본질, 자랄 때의 성장배경, 감정의 내용, 지적 능력, 육체적 조건, 하고 있는 일에 맞춰 다양하게 반응한다.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적 심리가 형성되는 데 그 기조는 자기 존재를 위한 ‘방어’와 ‘공격’ 기재(機才)다. 아울러 ‘내 편’ 또는 ‘우리 편’과, ‘네 편’ 또는 ‘적군’이라는 적대적 관계의 ‘편 가름’도 만들어진다. 우리 편은 항상 나에게 편안한 감정을 부어주지만 적군은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고 불쾌하다. 우리 편은 나에게 도움을 주지만 적군은 나에게 해를 끼친다고 자기암시를 한다. 따라서 우리 편에게는 무한한 관용의 태도를 보이지만, 적군에게는 끔찍할 정도의 적개심을 표출한다.

이런 편가름의 감정은 어떤 헤아림과 계산보다도 빠르고 그 강도도 더욱 강렬하다. 그리하여 이런 감정에 일단 사로잡히면 정확한 이성적 판단과 올바른 덕성적 행동은 저절로 마음으로부터 멀어진다. 무엇이 옳으냐, 그르냐를 헤아리는 진리와 진실의 자세는 멀어지고, 어떤 행동이 착한가 악한가 하는 선악의 거름막은 찢겨 지며, 어느 행위가 아름다운가 더러운가 하는 미추(美醜)의 감각도 무뎌진다. 그리하여 우리 편이 하는 짓은 그것이 아무리 그르고, 악하고, 더럽더라도 수용(受容)되며, 적군으로 규정된 사람이 하는 행동은 그것이 아무리 옳고, 착하며, 아름다운 것이라 하더라도 그 행동은 사악한 것으로 평가받아야 하고, 더러운 것으로 자리매김 돼야 하며, 물리침을 당해야 한다.

이러한 집단광기가 비록 끝내 파멸적 종말로 이어진다하더라도 현실에선 사회 곳곳에서 마치 ‘철칙(鐵則, iron law)’처럼 횡행한다. 여론조작으로써 훌륭한 사람을 악한으로 매도하여 비워둔 자리에 덜떨어진 ‘우리 편’을 이끌어 앉히고, 프레임 덧씌우기로써 탁월한 사람을 무능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내쫓아버린 자리에 쓸모없는 ‘내 편’을 자리에 둔다. 그리하여 집단적 파멸을 스스로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우리 편을 옹호하는 이런 집단적 광기의 한 모습을 ‘오버 생크션(over sanction)’이라 한다. 우리들끼리의 정서, 기준, 문화, 행태, 관습을 형성하여 여기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 아니면 우리들의 분류(分類) 바깥에 있는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도, 마치 맹수(猛獸)가 먹잇감을 사로잡아 갈기갈기 물어 씹어 뜯어 놓듯 그렇게 특정인을 난도질해버리는 것을 말한다. 끼리끼리 모여 귓속말로 쑥덕쑥덕하면서 대상이 되는 특정인을 짓뭉개버리고, 잘 발달된 SNS망을 통하여 특정인을 물어 씹으며 악성 댓글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행위 결과 우리들끼리는 매우 행복해한다. 우리들만의 뇌 속에서 ‘도파민’이라는 행복 물질이 분비되어 희열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내 공허하며 우리들은 또 다른 사냥감을 찾게 되고 우리들은 점점 우리들의 행복을 증폭시켜주는 살상쾌감(殺傷快感)의 마성(魔性)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는 ‘악마의 무리’들로 굳어져 간다.

인류의 종말은 육체적으로는 ‘미세플라스틱’에 의해, 영혼은 이러한 ‘악마적 냉소’로 인하여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수도 있다는 경고음도 심심찮게 들린다.

인류의 진정한 진보는 ‘배격과 청산’보다 ‘포용과 공생’이며, ‘끼리끼리의 마성 충족’보다 ‘선한 감성(感性)에로의 진화(進化)’다.

작금 인류공영을 바라는 세계의 정치는 더욱 이기적으로 후퇴하며, 우리 헌법 10조의 국민의 인권과 행복을 추구하여야 할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서로 편을 갈라 ‘증오(憎惡)’의 악다구니를 서로에게 퍼붓고 있다.

서로에게 ‘저주’의 화살을 날리는 우리 정치판의 이 더러운 권력투쟁을 ‘이게 현실이야’라고 체념하고만 있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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