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창군 주역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
공군 창군 주역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
  • 최원태기자
  • 승인 2019.12.04 16:50
  •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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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교육사, 창군 100주년 열어갈 정예 공군인 양성 다짐
▲ 공군교육사령부는 지난 3일 창군 7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의 정신을 계승할 정예공군인 양성을 다짐하기 위한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공군교육사령부는 지난 3일 창군 70주년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고,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의 정신을 계승할 정예공군인 양성을 다짐하기 위한 최용덕 장군 동상 제막식을 거행했다.


최근영 교육사령관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제막식에는 경남지역 정책발전자문위원, 교육사 지휘관·참모 등 100여명이 참석했으며, 최용덕 장군 공적 소개, 동상 제막, 교육사령관 기념사, 공군가 제창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제막된 높이 3.2m 동상은 최용덕 장군이 손을 펴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형상으로, 동상 좌대와 뒤편 부속조형물에 장군의 일대기가 서술돼 있다.

이미 교육사는 지난해 12월, 입영식과 각종 교육훈련을 위해 개관한 다목적강당을 ‘최용덕관’으로 명명한 바 있다. 이번에는 ‘최용덕관’ 입구에 최용덕 장군 동상을 설치함으로서, 신병 및 장교‧부사관 후보생 등 미래 공군인과 군 가족, 교육사 방문객에게 귀감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특히 교육사에서 시행되는 양성‧보수 교육과정에 공군의 결의 제창 및 묵념 등 장군 동상 참배 시간을 포함하여 공군 정신의 표상인 최용덕 장군을 지속적으로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해 나갈 예정이다.

최근영 교육사령관은 기념사에서 “우리 공군이 강한 힘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뒷받침하며 창군 100주년을 향해 힘차게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사령부 전 장병 및 군무원은 ‘하늘에 살면서 하늘에 목숨 바친다’는 최용덕 장군의 정신을 계승해 정예 공군인 양성에 최선을 다할 것을 엄숙히 약속드린다”고 밝혔다.

한편, 공군 창군의 주역 최용덕 장군은 1898년 서울 출생으로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했다. 1919년 대한독립청년단,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을 뿐 아니라, 중화민국 공군의 고급장교로서 중화민국 공군 건설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40년 광복군 창설 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등을 거쳐 1944년 참모처장을 역임했다.

특히, 1943년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군설계위원회 조직을 주도해 공군 창군의 기원을 이루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공군을 창군하기 위해 국내 항공단체들을 통합하여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했다. 이후, 다양한 출신의 국내 항공인의 힘을 하나로 모아 공군을 창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특히, 1948년 4월, 5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항공부대 창설을 위해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서 기본군사훈련을 받고, 조선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하며 소위로 임관하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몸소 실천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최용덕 장군은 초대 국방부차관에 임명됐으며, 국군조직법 제정에 관여하며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결국, 1949년 10월 1일, 마침내 최용덕 장군의 일생 숙원이었던 대한민국 공군 창군이 이뤄졌다.

이후, 최용덕 장군은 1950년 공군에 복귀해 6·25전쟁에 참전했고, 1952년 제2대 공군참모총장을 역임한 후 1956년 중장으로 전역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최용덕 장군은 “내가 죽거든 수의 대신 공군복을 입혀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1969년 8월 15일, 71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최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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