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추억이 된 새끼와 가마니
기고-추억이 된 새끼와 가마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05 16:19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호연/합천 쌍백면
김호연/합천 쌍백면-추억이 된 새끼와 가마니

모처럼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행운이 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이리저리 넘기다 무심코 막내딸 부부 내외, 사돈 부부 내외, 우리 부부 내외의 6명이 제주도 여행에서 함께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1남 2녀를 두었다. 위의 1남 1녀도 결혼하고, 최근 결혼한 막내딸도 헤아려보니 벌써 몇 년이 지났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내가 낳은 세 자녀도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찾아 내 품을 떠난 것이다. 작지 않는 시골집에 부부 둘이만 거처하다보니 적적한 때가 많다. 하지만 다행히도 요새 교통이 좋아 일이 있으면 자녀들을 쉽게 만날 수 있기는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만남의 빈도가 줄어드는 것 같아 내심 섭섭하기도 하다.

그런 우리 부부의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3년 전에 막내딸이 시가 부모와 친정 부모를 함께 제주도 여행에 초대한 것이다. 그런데 농촌에 사는 우리는 하필이면 모내기 준비가 한창이라 호의는 고마우나 갈 수 없다고 했다. 그럼에도 막내 사위는 “여행은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훌쩍 떠나는 것”이라며 강권을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물론 다른 자녀들의 권유도 무시하기 힘들어 사진 속의 6명이 하늘을 날아 제주도 여행길을 나섰던 것이다. 막둥이가 명승지와 맛집 등 여행할 곳을 꼼꼼하게 작성해왔다. 이동 수단은 막둥이의 제주도 사는 후배 차를 빌려, 우리는 명승지와 맛집을 찾아다니며 즐겁고 행복한 여행을 한 것이 되살아난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추억의 테마 공원’이란 곳에 들렀다. 무심코 걷다가, 나도 모르게 나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우아! 세상에 이런 것들이 여기에 있다니?”
보는 순간 가슴이 뛰고 약간 마음도 흥분된다. 옛날 내가 어릴 적 살았던 초가지붕 집이 아담하게 꾸며져 있다. 집 속에 남자꼬마 넷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어깨동무를 하고 서있다. 그리고 할머니 어머님이 쓰시던 물레, 두레박 등 고가구도 즐비하다. 옛날 전통 혼례 하는 모습, 엎드려서 머리를 앞사람 다리사이에 박는 말 타기, 옛날 재래식 변소의 저장물을 논이나 밭작물에 거름을 주는 똥장군이란 것도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산업화 선진화 되면서 이런 것들은 골동품이 되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으니 마냥 좋아할 수만도 없다. 나는 새끼 꼬는 기계 앞에서 새끼 꼬는 시늉도 하고, 가마니틀을 가리키며 짚 잣대 잡던 흉내도 내다가 그만 타임머신을 타고 새끼 꼬며 가마니도 짜는 결혼 전의 시절로 돌아간다.

농번기가 끝난 농촌의 겨울은 다가오는 일 년 동안에 쓸 각종 소품이나 재료 등을 준비해서 비축해야 농번기 때 유용하게 쓸 수가 있다. 새끼는 벼 집단으로 아주 길게 꼬아서 새끼타래를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뽑아서 쓴다. 특히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서 사랑방에 삼삼오오 모여 입은 동네의 시시콜콜한 주제를 화제로 나누고 손은 즐겁게 새끼를 꼬며 겨울을 보낸다. 그러다가 60~70년대에는 새끼 꼬는 기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새끼 꼬는 기계는 물레처럼 생겼는데, 짚을 넣을 수 있는 두 개의 구멍이 있다. 구멍 속에 짚을 넣어 두발을 밟으면 짚 꼬아지며 새끼가 되는 것이다. 처음 기계에 꼬아지는 새끼를 볼 때 얼마나 신기했던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펴보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새끼는 용도에 따라 짚을 조절하여 꼬면 굵은 밧줄도 만들고, 가늘고 곱께 꼰 새끼는 가마니의 뼈도 되고, 멍석에는 각종 곡물을 말리기도 한다. 덕석을 적게 만들어서 추운 겨울에 애기송아지와 엄마 아빠 소등에 덮어주면 고맙고 감사하다는 답례라도 하듯이 목에 달린 워낭소리를 요란스럽게 흔든다.

그러면 아버님은 “그래그래! 추운겨울을 이 덕석을 덮고 잘 견뎌보자!”라고 하신다. 나는 말 못하는 짐승한테 저렇게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을 지켜보며, 아버님의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새끼를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만든다. 짚신도 만들고 망태기와 짚 소쿠리, 방석, 항아리 뚜껑 등도 만든다. 망태기는 어깨에 메고 시장에 가 구입한 물건을 망태기속에 담을 수 있는 가방 역할도 한다. 오늘처럼 축구공이 없던 시절, 오빠들은 새끼를 돌돌 말아서 축구공을 만들어 마을 앞 논에 임시 축구장을 개설한 다음 축구 시합을 하는 날은 온 동네가 축제분위기였다. 마을사람들 전체가 나와서 자기네 가족이 포함된 팀을 응원하느라 흥분되어 작은 골짜기가 한 바탕 들썩들썩 하기도 했다. 새끼공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라도 하면 서로 잡으려고 필사적이었다. 그러면 지켜보던 부모님들은 행여 다칠세라 “이놈들아! 조심조심 해야지”라고 걱정을 하곤 하셨다.

가늘고 고운 새끼는 가마니를 제조하는데도 많이 사용된다. 바디 구멍에 새끼줄을 엮은 다음 오빠가 바디 손잡이를 든 순간, 나는 들고 있던 대나무로 만든 긴 바늘에 짚을 꽂아 가마니틀에 잽싸게 넣어주면 오빠는 바디를 내리친다. 그렇게 해서 가마니가 완성이 되면 낫이나 칼을 이용하여 끝부분을 잘라서 끝자락에 새끼줄을 손으로 끝매듭을 엮어 놓는다. 그 다음으로 가마니를 반으로 접어 돗바늘로 기우면 가마니 완성품이 되는 것이다. 매끈하게 짜인 가마니 속에 보리나 나락을 넣어 수매를 하기 위해 농협으로 싣고 가면. 보는 사람마다 가마니가 매끈하게 잘 짰다고 칭찬을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친환경 제품, 새끼나 짚으로 만든 제품들은 원래의 자리인 농촌에서 떠나 이제 공예품으로 박물관이나 전시장에서나 볼 수 있다. 멍석이나 덕석들은 찜질방에 가야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그렇게 소중하게 쓰이던 물건들이 골동품이 되어 우리 기억 속에서 조금씩 사라지고 있는 것이 어쩐지 안타깝고 서글픈 것은 아직도 향수가 있다는 심증일까? 제주도에서 집으로 오는 도중 문득문득 내 젊은 시절의 그리움으로 눈시울이 몇 번이나 뜨거워지기도 했다. 농촌의 필수품인 새끼와 가마니는 옛날의 추억이 되어 우리 곁을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