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크레스피 효과
칼럼-크레스피 효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09 16:13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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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크레스피 효과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이 있다. “이번 달리기 대회에서 3등 안에 들면 상으로 용돈을 10만원 더 올려주겠다”라는 것이 ‘당근’ 즉 보상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무조건 많이 주면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심리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면 10만원 받다가 5만원을 받으면 계속 3만원만 받아오던 친구보다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1942년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 레오 크레스피(Leo crespi, 1916~2008)는 보상과 일의 수행 능력 관계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쥐에게 미로 찾기를 시키고 성공하면 먹잇감을 주는 실험이다. 그룹별로 보상으로 주는 먹이양을 달리하고 얼마나 쥐들이 빨리 달리는지를 관찰했다. 보상으로 주는 먹이양은 1, 4, 15, 64 등으로 크게 차이가 났다. 당연히 보상이 큰 집단의 쥐일수록 더 빨리 달려서 미로를 돌파하려고 했다. 여기까지는 보상이 크면 더 열심히 일한다는 상식적인 내용이었다.

그런데 크레스피는 여기서 새로운 실험을 해보기로 한다. 보상을 늘리거나 줄일 때 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했다. 16의 보상을 꾸준하게 받는 쥐, 1을 받다가 16을 받는 쥐, 64에서 16으로 줄인 뒤 등을 실험했다. 그랬더니 보상을 늘린 쥐는 전체 보상을 가장 적은 17(1+16)을 받았지만 가장 빨리 움직였고, 보상을 꾸준하게 받아(32(16+16)를 얻는 쥐는 중간, 보상이 줄어들었지만 받은 것은 가장 많은 80(64+16)인 쥐가 가장 느렸던 것으로 나타났다. 얼마나 보상을 받는지 보다 ‘이전보다 늘었느냐 줄었느냐’가 차이를 만들었던 것이다. 연구자는 쥐를 통해서 ‘보상이 이전과 비교했을 때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가 얼마나 보상을 받는지보다 더 중요하다’는 힌트를 얻었다. 연구자의 이름을 따 이를 ‘크레스피 효과(Crespi effect)’라고 한다. 그는 이 아이디어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처음에는 많이 받다가 나중에 그 양이 줄면 일단 기분이 나쁘다. 월급 1000만원을 받던 사람이 800만원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만, 300만원을 받던 사람이 400만원을 받으면 기분이 좋은 것이다.

이런 ‘크레스피 효과’는 보상뿐 아니라 처벌에도 적용이 된다. ‘크레스피 효과’가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분야가 미국의 ‘팁’문화였다. 팁은 종업원이 서비스를 잘할 때 손님이 보상으로 주는 것인데, 종업원이 받고 만족할 팁 액수는 갈수록 올라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크레스피는 1940년대부터 미국 팁 문화를 반대했는데 별다른 효과는 거두지 못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음식 값의 10%를 팁으로 주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현재는 평균 18%로 올랐다고 한다. 쥐야 ‘먹이’가 보상의 전부일 수 있지만 사람은 조금 다르다. 부모님도 보상으로 ‘칭찬’, ‘간식’, ‘용돈’선물‘등 다양한 것을 주게 된다.

미국 행동경제학자이자 심리학자인 댄 애리얼리(Ariely)교수 등은 2017년 이와 관련한 실험을 학술지에 소개했다. 연구진은 이스라엘 반도체 공장 기술자 156명을 대상으로 5주 동안 보상방식이 업무 생산성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했다. 보상은 현금 3만원, 3만원짜리 피자 교환권, 상사의 칭찬 세 가지였다.

보상의 종류와 상관없이 보상을 주자 생산성은 평균적으로 5.7%포인트 높아졌다. 연구진은 보상 종류에 따라 생산성 지속 효과가 다른지를 알아보았다. 한 번 보상을 받은 다음에 보상을 주지 않으면 업무성과가 바뀌는지를 관찰하게 되었다. 보상을 아예 주지 않자 전체적으로는 생산성이 떨어졌다. 보상 유형별로 보면 현금을 받은 경우가 가장 생산성이 크게 떨어졌고(6.5% 포인트 하락), 피자 교환권(2.1% 포인트 하락)이 뒤를 이었다. 그런데 보상으로 상사의 칭찬을 받은 경우에는 사흘 동안 다른 보상이 없어도 생산성이 평균 수준을 유지했다. 돈이나 피자 같은 물질적 보상은 일시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지만, 보상을 멈추면 생산성이 바로 떨어지는데, 상사의 칭찬과 같은 감정적 보상은 일할 맛 나는 환경을 만들어 그 효과가 오래간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확대되고 있는 복지제도에도 이를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금전적·물질적으로 보상하는 방식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보상 방식은 점점 더 많은 금전적 보상을 기대하게 하고 보상이 중단되면 효율성과 만족도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필자도 직장생활을 할 때 12월이 되면 년 말 보너스가 나온다는 기대감에 더 열심히 일했던 추억을 더듬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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