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잊혀진 역사를 찾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경남의 잊혀진 역사를 찾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 황원식기자
  • 승인 2019.12.10 16:59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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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들의 흔적 찾아내는 것 자체로 가슴 벅찬 일”
▲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과 창원시 용호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창원·사천 사직단 등 유적 잇달아 발견 화제

‘경남의 역사이야기 해보자’ 모여 회원 50여명

창원 3.23 독립만세운동 등 지역역사 드러내
자료 부족·험한 길 답사 힘들지만 보람 있어

합포해전 전적지·진주 용다리 위치 의문제기
진해 웅동·웅천지역 역사문화벨트 조성 주장


경남의 숨어있던 사직단들이 110여 년 만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직단은 신들에게 풍요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단을 쌓은 곳으로 각 고을마다 하나씩 있었다. 하지만 1908년 일제 통감부에 의해 사직단이 철폐되면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지난 11월 창원 사직단과 올해 3월 사천 사직단 등을 잇달아 발견하면서 화제가 된 시민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현재 경남의 사직단을 주로 찾으면서 여제단, 성황단, 읍성, 왜성, 수군진성 등 경남 역사의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경남의 역사 설명회·강의를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자주 등장하고 있다. 우리 지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 봤을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그 주인공이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대표 김성곤)는 창원 읍성 복원과 진해 웅천지역의 관광 자원화 등을 주장하며 지역 문화정책에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 ‘이제마 진해현감 부임 행사’, ‘창원 3.23 독립만세운동 행사’를 창원시로부터 이끌어내는 등 지역사회의 크고 작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경남시민네트워크 조현근 사무국장을 만나 단체의 목적과 계획 등을 들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찾은 창원 사직단의 담장으로 추정되는 곳.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가 찾은 창원 사직단의 담장으로 추정되는 곳.

다음은 조현근 사무국장과의 일문일답.

-창원 사직단을 처음으로 찾았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진주성같이 희소성이 크고 대외적인 관심이 높은 유적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각 고을마다 있었던 3단(사직단·여제단·성황단)에 주목했다.

우연히 ‘창원 사직단’이라고 인터넷 검색창에 쳤는데 ‘창원 부읍지에 의하면 창원의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2리에 있다고 한다’, ‘현재 사직단이 있었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의 내용을 보고 의구심을 가지고 회원들과 답사에 나섰으나 찾지 못했다.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조선총독부에서 1929년 발행된 고건축물목록 경상남도편을 열람하면서 사직단의 지번 주소를 알았고, 1954년 찍힌 항공사진으로 사직단의 정확한 위치를 발견, 답사를 통해 지난해 11월 찾을 수 있었다. 창원 사직단의 위치는 창원 의안교차로 근처 공용주차장 아래였다. 창원시는 내년부터 예산을 반영해 창원 사직단 일대의 지표조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천 사직단이 있었다고 추정된 장소. 도시개발사업 예정지라 훼손이 많이 된 상태이다.
사천 사직단이 있었다고 추정된 장소. 도시개발사업 예정지라 훼손이 많이 된 상태이다.

-사천 사직단은 어떻게 찾게 되었나
▲사천시의 사직단은 과거 곤양군과 사천현에 각각 1개씩 있었는데 곤양 사직단은 지난 2015년 3월 진주박물관이 학술연구 중 발견했다. 우리가 찾은 것은 사천현에 있었던 사직단이다.

고건축물목록에도 없었던 사천 사직단은 1872년도 조선후기 지방지도와 현재의 지적도를 대조해서 찾았다. 특히 이 지역은 1916년 조선총독부가 작성한 지적도에서 해당 지번에 ‘社(사)’라고 표기하고 었었고, 오늘날 지적도에는 ‘종’(=종교시설)이라 표기하고 있어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발견 당시 사천시 도시계획(사천시 사주용당지구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많이 훼손된 상태여서 너무 안타까웠다. 사천시는 현장을 확인했지만 현재까지도 발굴조사 등의 계획이 전혀 없어 보인다.


경남의 사직단 현황은 산청군의 단성 사직단(경남기념물 255호)이 이전부터 유일하게 남아 있었다. 지난 2010년 이후 창녕 사직단(경남기념물 278호)이 복원됐으며, 진주 사직단(경남기념물 291호), 고성 사직단(경남기념물 296호)이 발굴됐다. 이후 거제·밀양·창원·곤양 사직단의 위치를 발견했다. 사천 사직단은 위치를 발견했지만 토지재개발로 흔적이 없어졌고, 합천 사직단은 지방공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외 함양·산청 사직단은 지번 주소는 나왔지만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다. 김해, 양산, 영산, 거창, 하동, 남해, 삼가, 초계, 안의, 함안, 의령, 통영의 경우는 지번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무엇을 더 찾고 있나
▲현재는 경남의 아직 찾지 못한 사직단을 중점으로 찾고 있다. 사직단·여제단의 경우 의심스러운 장소를 몇 군데 더 찾았지만 전문가의 지표조사가 필요하다. 이외에도 경남의 역사가 되는 유적들은 다 찾으려고 한다. 지금은 기록이 남아 있는 것 위주로 찾고 있다. 현재 열심히 자료를 모으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을 하게 됐나
▲우리 단체의 설립은 지난해 10월인데 그전에도 ‘경남문화네트워크 준비위원회’로 2년 정도 있었다. 처음에는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몇 분 모여서 커피를 마시며 경남지역의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다. 그래서 알음알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서 고문헌을 찾아보고 역사 현장을 둘러보면서 이상한 점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7명으로 시작해 지금 회원은 50명이 넘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회원들은 경남의 읍성, 왜성, 수군진성 등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회원들은 경남의 읍성, 왜성, 수군진성 등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다.

-유적 답사 이외에 하는 일은
▲우리는 경남지역의 유적뿐만 아니라 지역의 역사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다. 지역의 의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있으면 사람들에게 알리고 지자체에 문화·관광 자원화 제안을 한다.

예를 들어 1919년 창원 지역에도 3월 23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하지만 경남 사람들은 대부분 그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창원에도 이런 자랑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사람들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창원의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창원시에 제안해 올해부터 개최하게 되었다.

또한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조선시대 의원 이제마가 진해에 2년 동안 현감으로 온 적이 있다. 그 사실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체적으로 ‘이제마 진해현감 부임행사’를 3회째 진행했으며, 창원시가 이 행사를 주최해야 한다고 촉구해 내년부터 창원시 주최로 행사가 열린다.

아울러 우리는 읍성·왜성 견학 등 학교나 단체 등을 대상으로 경남지역의 역사 가이드를 하기도 한다.

-활동하면서 힘든 점은
▲우리가 보통 답사를 할 때는 문헌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 지역 어르신들의 말씀을 참고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자료 자체가 부족해서 답사에 어려움이 많다. 계속해서 자료를 모으고 있기는 하다.

또한 고건축물목록에 사직단의 지번 주소가 나와 있어도 산 하나가 하나의 지번인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산 전체를 다 뒤져야 한다. 또 유적을 찾을 때 등산로처럼 정돈된 산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험한 길을 가다 보니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다. 또 그렇게 힘들게 유적을 찾았는데 그 일대에 이미 다른 건물이 들어섰거나 개발예정지라서 유산이 훼손됐거나 없어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팠다.

-답사하면서 의심스러운 점들을 발견했다는데
▲진해 학개마을에 가면 그 일대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함대가 일본군과 싸웠던 합포해전 전적지라는 승전기념비석이 있다. 회원들은 이 사실에 의문을 가졌다. 난중일기에는 이순신 부대가 거제 영등포(현재 거제시 장목면 구영리)에서 쉬고 있을 때 왜선이 지나간다는 첩보를 받고 그들을 추적해서 해가 지는 시간에 싸웠다고 나와있다. 그런데 추적에 나선 시간이 오후 4시였다. 그 때가 양력 6월 16일인데 해가 길 때이다. 내가 보트를 타고 그 당시 판옥선의 속도인 시속 6km의 속도로 운전해 가보니 거제 구영마을에서 진해 학개까지 1시간 5분 걸렸다. 하지에 가까운 그때에 해가 지려면 적어도 3시간 이상은 걸린다. 우리는 현 두산중공업이나 창원 귀산마을을 합포해전 전적지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진주 용다리 전설에 나오는 그 ‘용다리’가 있었던 위치를 진주시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는 용다리(홍교)의 잔해들만 남아 있어 진주성 안에 모아놓았다. 그 안내판에는 ‘진주시 동성동 212-1번지(삼성화재)부근에 용머리가 양쪽으로 붙어있는 돌다리가 있었다’고 적혀져 있다. 그런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중인 ‘진주성도’를 참고하고, 1915년 당시 지적도를 바탕으로 현재의 지도 위에 표시를 해보니 용다리가 진주시에서 이야기한 장소가 아님을 알았다. 진주시에서 이야기한 곳에서 직선거리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인 지금의 진주교의 입구에 ‘용다리’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정확한 것을 파악하려면 전문가들의 조사가 있어야 할 것이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는 ‘이제마진해현감부임행사’를 3회째 주최했다.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는 ‘이제마진해현감부임행사’를 3회째 주최했다.

-진해 웅동·웅천동 지역에도 관심이 많다는데
▲진해는 현재 서부권 중심으로 개발이 많이 돼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진해 서부 중심으로 도심지가 형성돼 있기 때문에 동부권(웅동·웅천동)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는 것이다. 하지만 웅천지역은 이전한 웅천초등학교를 기준으로 반경 3km 안에 웅천읍성, 수군진성, 왜관, 왜성, 봉수 등 유적이 밀집돼 있다. 전국에 이런 곳은 없다. 중세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무역·군사적 요충지였던 진해 동부지역이 역사문화벨트 지구로 부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우리는 창원시에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언제 보람을 느끼는가
▲우리는 비영리단체로서 회원들은 다들 생업이 있다. 이 일 자체는 우리가 순수하게 좋아서 하는 일이다. 우리 지역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내는 것은 그것자체로 가슴 벅찬 일이다. 사람들이 그 의미를 충분히 느끼고 가치가 향유될 수 있다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활동으로 풀리지 않았던 우리 지역 역사가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고, 잊힌 것들이 재조명 되는 것 같아 보람 있다. 특히 창원 3.23 독립만세운동이나 이제마 현감부임 행사 등 창원시가 우리의 의견을 수용해 이 사회가 실제로 움직인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황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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