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중국의 ‘패릉’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했다
시론-중국의 ‘패릉’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1 15:5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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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
강원식/정치학 박사·외교안보평론가-중국의 ‘패릉’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했다

2016년 7월 사드(THAAD) 배치 이래로 중국이 우리에게 가한 경제보복과 한류금지령(限韓令)은 아직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4~5일 방한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또다시 사드를 언급했다. 한국의 주요 인사 100명을 ‘소집’(60명 참석)한 환영오찬에서 왕이 부장은 중국공산당이 주도하는 중국특색 사회주의를 칭송하고 미국의 일방주의·패권주의·강권주의를 비판하면서, 한중 양국간의 더 높은 수준의 정치해결(사드 완전 철수), 더 높은 수준의 양자협력(한중 FTA와 일대일로 참여), 더 높은 수준의 다자협력(미국의 보호주의와 패권주의에 함께 맞서기) 등 세 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시진핑 주석 방한 요청에 대한 중국측 조건인 셈인데, 미국을 버리고 중국 손을 잡으라는 공개적인 압력이다.

왕이 부장은 미국의 ‘패릉’(覇凌)을 비판했다. 중국에서 지금 유행하고 있는 용어인 ‘패릉’(중국 발음 ‘바링’)은 영어 ‘불링’(bullying)을 음역한 것으로 ‘힘센 패자의 약자 능멸’이다. 힘센 미국이 약한 중국을 괴롭힌다고 비난하는 말이다. 중국이 과연 약자인가. 분명한 것은 중국도 미국이 힘센 패자임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미국의 ‘패릉’을 말하지만, 정작 힘센 중국이 약한 한국을 괴롭히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약자가 된 것은 ‘진짜 힘센’ 미국의 손을 우리 스스로 놓아버렸기에 중국이 깔보기 때문이다. 한일 지소미아와 주한미군 분담금 등에서 드러났듯이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자, 중국이 그 틈새를 공개적으로 파고들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문재인정부가 자초했다. 처음부터 북핵은 한국을 겨냥한 것이며 우리 국가안보에 대한 최대의 위협임을 강조했어야 했다. 한국이 직접 피해자라고 주장했어야만 했다. 북핵 보유의 원인과 책임을 추궁하고, 북핵 폐기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았어야 했다. 그랬다면 북핵 보유에 일정한 책임을 결코 면할 수 없는 중국이 피해자인 한국에게 이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는 북핵이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 규정했다. 미북관계만 개선되면 김정은 위원장이 북핵을 스스로 폐기할 것이라 낙관하고 이를 미국에 중재했다. 남북관계는 ‘평화경제’를 주장하며 장밋빛 미래를 말하기만 했다. 이런 관점이라면 한국 안보에 대한 위협은 북한이 아니라 미북갈등이 된다. 미국의 대북 ‘압살’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이 한반도 전쟁위기로 발전할 수 있기에, 미국의 군사도발을 막는 것이 문재인정부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과제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면서도 한반도 평화를 유지·관리할 수 있는 강국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사드도 미국이 북한과 중국을 괜스레 자극하는 것으로 규정되었다.

삐거덕거리는 한미동맹은 어디로 가고 있나. 주한미군 철수를 넘어 중국의 핵우산 제공까지 말해진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주중대사로 갔을 때, 만절필동(萬折必東) 즉 황하의 물결이 동쪽 끝까지 미친다며 중국의 은덕을 칭송했다던데, 과연 미국을 떠나 북한과 중국의 품속에 있으면 되는가. 우리 국민은 자유와 번영을 보장받을 수 있는가.

36계로 말하자면, 중국은 한국에게 진화타겁(趁火打劫, 적의 내우외환에 올라타기), 미국에게는 조호이산(調虎離山, 호랑이가 산을 떠나게 만들기)의 계를 쓰고 있다. 호랑이 미국은 산을 떠날 수 있고, 우리의 내우외환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만 간다. 이를 자초한 문재인정부에게 이를 타개할 묘안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36계의 마지막 수단은 줄행랑이다. 그런데 우리 일반 국민들은 도망갈 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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