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평안할 康(강)씨의 絆緣(반연)
진주성-평안할 康(강)씨의 絆緣(반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1 18:2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평안할 康(강)씨의 絆緣(반연)

전 법무부 장관 강금실. 현 외무부 장관 강경화 등이 평안할 康(강)씨 즉 신천 강씨 이다.

<한국성씨보감> 14면~15면에 의하면 ‘강씨의 본관은 10여본이 전하고 있지만 그중 신천, 곡산, 재령이 대본으로 오늘날엔 위 세본 이외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康(강)씨의 도시조는 기자 조선 시대의 강숙이고 사조는 강호경(康虎景)으로 신라 말에 성골장군으로 백두산에서부터 각지로 유랑하다가 개성 부소산에 터를 잡고 살았다. 뒤에 강충이란 아들을 낳고 강충은 강보육을 낳았으니 이 분이 고려 태조 왕건의 외고조부가 된다.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자 원덕대왕으로 추존되었다.

후손으로 충렬공 강지연(康之淵)은 고려 고종 때 몽고가 침략하자 왕을 호종한 공적으로 호종공신 신성부원군에 봉해 졌다.

6세손 강윤성은 충혜왕 때 문과 급제해 한림학사 문화평장사에 올랐다.

강득용은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의 오빠인데 조선이 건국하자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관악산에 올라 송도를 향해 통곡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연주암 연주대가 있다고 전해 온다.

태조대왕 이성계가 안릉부원군에 봉하고 정안공이란 시호를 내렸다.

고려 목종 때 무신으로 도총관을 지낸 강조가 역사상 기록에 있고 강윤성의 딸이 이성계의 비인 신덕왕후이지만 이방원 일파에 의해 방번, 방석 왕자(세자)들이 무참하게 시해되었다.

강윤성의 증손 강순은 회령부사 목사 중추원사를 지내고 명나라에 사은사로 다녀오고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진북장군으로 난을 평정하고 신천부원군으로 봉해졌다. 남이 장군과 함께 죽었는데 고종 8년 억울한 죽음이었음이 밝혀져 장민공 시호가 내려졌다.

고려 때 무신으로 도총관에 오른 강조가 있고 강호문은 공민왕 때 판전교사사에 오르고 강순용은 공민왕 때 찬성사가 되었다.

조선 시대에 문과급제자 36명과 생원 진사 입격자가 200여명이 나왔으니 소수 명문에 속한다.

후손으로 서울대 교수 강원택. 영화감독으로 <달콤한 신부>를 시작으로 청룡영화상을 받은 강우석 감독은 영화사상 천만 관객을 모은 <실미도>와 엄청난 호응을 얻은 <공공의 적>을 감독해 유명하다.

후손 강준만 교수는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형평운동사도 연구했다. 배우 강석우는 <겨울 나그네>, <아빠를 부탁해> 등에 출연했고 신천 강씨 종친회장 강창수는 시장을 역임했으나 지난 7월 별세해 강왕수씨가 장의위원장이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