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다시 성탄절을 앞두고
시론-다시 성탄절을 앞두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5 15:4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
김종회/문학평론가·박경리 토지학회 회장-다시 성탄절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도와 날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주후(After Death) 1세기 동안은 기독교인에 대한 핍박이 극심했고, 또 당시에는 생일보다 사망일을 더 기념하는 풍습이 있어서 성탄을 경축일로 받아들이는 데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2세기에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 지속되었으며, 사도들이 쫓겨 다니고 순교를 당하는 형편이었으므로 성탄의 개념과 가치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기 어려웠다. 성탄의 중요성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4세기에 들어와서다.

AD 354년 로마의 주교 리베리우스는 로마의 동짓날인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도록 정했다. 5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수의 탄생일이 최대의 축제일로 선언되었는데, 로마의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예수의 탄생 일자에 대한 여러 설을 칙령으로 모두 폐기하고 마침내 12월 25일로 단일화하여 확정지었다. Christmas를 X-mas라고도 하는 것은, 그리스도라는 말의 희랍어 첫 글자 ‘X’에 고어 ‘messe’(미사)를 덧붙인 것으로, 예수가 탄생한 날에 미사를 드린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지금은 예수의 탄생을 온 세계에서 축하하고 있고, 이를 기원으로 하는 서기원력이 온 세계에서 사용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은, 특히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억눌린 자들에게 큰 기쁨이었다. 이 뜻을 가장 잘 전한 사람은 상투 니콜라우스이다. AD 270년 경 소아시아 지방 리치아의 파타라 시에서 태어난 그는, 강렬한 자선심으로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후에 미라의 대주교가 되었고, 카톨릭 교회에서는 그를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오늘날 성탄절을 기다리는 어린아이들에게 귀하고 아름다운 소망이 되는 산타클로스는 바로 그의 이름으로부터 말미암았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성목숭배에서 발원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동지제를 맞아 죽음을 극복한 생명의 상징인 상록수로 집안을 장식했다. 이러한 성목숭배 사상이 기독교의 문화 전통과 결합하여 곧 크리스마스트리가 된 것이다. 8세기경 독일에 파송된 최초의 선교사 보나파치오가 사역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종족들은 목신을 섬기고 있었다. 이들은 큰 상수리나무 아래에 둘러서서 천둥과 번개의 신 토르(Thor)에게 어린 아이를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 중이었다. 보나파치오는 그 아이를 구하고 그들의 신인 상수리나무를 베어버렸다.

큰 상수리나무가 쓰러진 후, 그 그루터기에서 작은 나뭇가지들이 나왔다. 보나파치오는 그것을 가져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고 우상 숭배의 허탄함을 일깨웠으며, 이와 함께 예수를 전했다. 트리에 다는 별은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별의 의미를 지닌다. 트리를 장식하는 전구에는 예수가 세상의 빛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트리의 발아래 사랑의 선물을 쌓아 놓고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은, 믿음으로 정성을 드리고 또 그러한 행위 자체가 더없는 희락이 됨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그런데 해마다 기쁨으로 맞이하는 성탄절이지만, 그 성탄절이 예수의 탄생을 경축하는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탄생을 계기로 베들레헴 인근 두 살 아래의 영아들이 모두 살해되는 비극이 있었다. 당시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 왕 헤롯의 박해 때문이었다. 성탄절에는 그처럼 전혀 다른 두 의미가 함께 있다. 축일을 밝히는 불빛이 휘황한 만큼, 어렵고 힘든 자리에 있는 이들을 마음을 다해 섬기고 서로 가진 것을 나누어야 하는 이유다.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머리맡에 양말을 걸어놓고 밤이 이슥하도록 산타클로스를 기다렸다거나 성탄절의 아침 종소리를 들으며 흰 눈발을 헤치고 교회를 찾아갔던 추억이 서려있다. 이번 성탄절에는 흰 눈이 펑펑 쏟아지기를, 그래서 모처럼 온 세상이 평온해지기를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