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천국이 가깝나니…”
아침을 열며-“천국이 가깝나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5 17:1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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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외적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외적교수-“천국이 가깝나니…”

“회개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첫 공식발언인 이 역사적인 말에는 “천국이 가깝나니”(for the kingdom of heaven is near) 라는 말이 함께 붙어 있다. ‘천국이 가깝다’, 이 말을 나는 하나의 수수께끼처럼 가슴에 품고 있다.

이 말에 얽힌 추억이 하나 있다. 몇 년 전 방문학자로 미국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학에 머물고 있을 때, ‘철학의 형성: 동양 대 서양’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다. 공자의 ‘정’(正), 부처의 ‘도’(度), 소크라테스의 ‘지’(知), 그리고 예수의 ‘회개’(悔改)를 이른바 ‘궁극의 철학’으로 제시하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그랬더니 질의응답 시간에 현지의 시민 한분이 “그렇다면 부처의 니르바나와 예수의 천국은 어떻게 다른가”라는 질문을 던졌었다. 그때 나는, ‘문제의 출발점과 맥락이 다른 철학적 가치들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그 문제의 핵심을 놓칠 위험이 있다, 일단은 각각의 문맥 속에서 그 각각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니르바나는 ‘고’(苦)와의 연관에서 생각해야 하고 천국은 ‘죄’(罪)와의 연관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 취지로 답변을 했었다. 별 신통한 답변은 못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계기가 되어 ‘천국이란 무엇인가’가 나의 철학적 주제로 가슴 한켠에 자리잡게 된 것이다. 신학적으로 어떤 정답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게 저 구름 위에 있는지, 저 죽음 뒤에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기를 치고 싶진 않으니까. 공자도 죽음 뒤는 모른다 했고 소크라테스도 그건 모른다고 했다. 그러니 내가 그걸 알 턱이 없다. 그러나 철학적으로는 할 말이 없지 않다. ‘죄를, 잘못을 회개한, 뉘우친 이후의 상태’, 그런 게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그리고 세상에게든 이른바 ‘천국’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건 저 구름 위나 죽음 뒤나 그런 것처럼 멀리 있지 않다. 회개와 동시에 곧바로 실현되는 것이니 ‘가까운’(near) 것이다. ‘회개만 하면 거기가 바로 천국이다’, 천국이 가깝다는 예수의 이 말을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 황당한 말이 절대 아닌 것이다. 상상해보라, 죄가 있는 상태와 그 죄가 소멸된 상태를. 천국이 굳이 따로 있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잘못과 죄를 숨기거나 인정하지 않고 가슴속에 품고 있으면 그 상태가 곧 지옥이다. (물론 이른바 사이코패스들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그들의 마음속이 정말로 평온한지 그것도 내가 직접 그들이 되어보지 못해서 알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속엔 과연 지옥이 없을까? 언제나 천국 같을까?) 그 죄가 진행중인 거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는 그런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있다. ‘털어놓고 나니 시원하다’고 하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데, 나는 그런 상태도 ‘작은 천국’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네 삶의 전체적인 힘듦을 생각해보면 ‘그것만 해도 어디야’ ‘그것만 해도 대단해’라는 게 요즘 나이들어 가면서 내가 강하게 느끼는 가치관이다.

소박하게 말하자면, 죄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좋지 않다’고 느끼게 만드는 모든 짓이다. 기독교적으로는 아마 그 첫 번째에 ‘신’이 있을 것이다. 신이 ‘좋지 않다’고 느낀다면 그게 죄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 저 창조의 목적에 반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들은 보통 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즉 내가 하는 짓이 상대방에게 좋을 것인지 나쁠 것인지를 잘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나만주의’라고 개념화 한 적이 있다.) 그게 모든 잘못과 죄의 원천이다. 죄의 시작이다. 무시, 왕따, 욕설, 거짓말, 괴롭힘, 사기, 횡령, 도둑질, 폭행, 강간, 살인…그 모든 게 다 그 죄의 범위에 들어간다. 상대방을 좋지 않게, 싫게, 엄청나게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의 공간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이다.

천국은 그 대치점에 있다. 그게 ‘회개’와 더불어 곧바로 펼쳐지는 것이다. 이 모든 죄들, 내가 지은, 짓고 있는, 짓게 될 그것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것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나의 상태와 상대방의 상태를 고려하는 것이다. 그 ‘나쁨’을 고려하는 것이다. 말은 참 쉽다. 그러나 실제로 나 자신이 이것을 인정하고 뉘우치고 고려하는 것은 지난의 과제다. 우리의 실제 현실을 돌아보면 곧바로 확인된다. ‘잘못했다’는 말은, ‘다시는 안 그럴게’라는 말은, ‘정말 미안하다’는 말은, (이게 곧 회개이건만) 정말 듣기가 힘들다. 거의 사어가 돼버렸다. 정치인들도 국가들도 예사로 남들을 나쁘게 만든다. 이쪽은 죽을 지경이고 실제로 죽기까지도 하는데, 그렇게 만든 저들은 희희낙락 잘만 살아간다. 위안부-징용공의 경우, 윤일병의 경우, 윤창호의 경우, 설리의 경우…한도 끝도 없다. 오죽하면 신의 아들인 예수까지 나서서 ‘회개하라’고 외쳤겠는가. ‘회개’가 그만큼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죄진 자들이여, 그러면 바로 천국이 펼쳐질 테니. 그게 바로 천국일지니. 아주 가까이 있는 실질적인 천국.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럴게…” 정말 듣고 싶은 말이다. 그 말을 들으면 정말 천국의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속썩이는 자식들에게도, 형제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범인들에게도, 악플러들에게도, 테러리스들에게도, 일본에게도.... 명심해두자, 천국은 결코 멀리 있지 않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 아주 가까이에 있다. 천국은 회개와 연결돼 있다. ‘잘못했다’, ‘반성한다’, ‘뉘우친다’는 한 마디 말, 그게 바로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 황금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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