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경 호랑이 선생님에서 글로벌 LG 수장으로
구자경 호랑이 선생님에서 글로벌 LG 수장으로
  • 황원식기자
  • 승인 2019.12.15 18:24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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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부터 25년간 그룹 이끌어…세계적 기업 성장
교사 하다 경영권 승계…‘오직 사람이 경쟁력’ 철학
▲ 1999년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과 고(故) 구본무 전 LG회장이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

지난 14일 94세 일기로 별세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경영인이다.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인은 LG그룹에 들어와 회사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닦았고, 은퇴 후에는 자연인 생활을 하다 평화롭게 영면에 들었다.

◆교사 천직 여기던 ‘호랑이 선생님’ 부친 부름에 기업가로
구 명예회장은 고(故) 구인회 LG 창업회장의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태어났다. 구 명예회장은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천직으로 생각하며 교사로 근무하던 1947년 부친 구인회 회장으로부터 부름을 받는다.

구 창업회장은 당시 LG의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를 설립해 럭키크림 화장품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날로 번창하며 일손이 모자라자 아들에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낮에는 교사로, 밤에는 부친 사업을 도우며 지내던 구 명예회장은 아예 회사로 들어오라는 부친의 뜻에 따라 1950년 교편을 놓고 락희화학 이사로 취임하며 본격적으로 기업인의 길에 들어섰다.

LG그룹에 따르면 구 명예회장은 ‘이사’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을 샅샅이 누볐다. 구 창업회장은 “대장간에서는 호미 한 자루도 담금질로 단련한다. 고생을 모르는 사람은 칼날 없는 칼과 같다”며 혹독하게 구 명예회장을 가르쳤다.

그 덕에 구 명예회장이 쌓은 풍부한 경험과 현장 감각은 구 나중에 화학·전자 사업을 발전시키는 동력이 됐다.

◆한국 ‘럭키금성’을 ‘글로벌 LG’로
구 명예회장은 1969년 구 창업회장이 별세하면서 경영을 이어받아 1970년 그룹 2대 회장에 올랐다. 1970년부터 25년간 그룹을 이끌며 회사를 한국 기업 럭키금성에서 세계적인 기업 LG로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명예회장은 연구개발에 승부를 걸어 투자·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70년대 중반 럭키 울산공장과 여천공장이 가동을 시작하기 전에 구 명예회장의 지시에 따라 연구실부터 만들어졌다.

그는 연구실이 각 공장마다 소규모로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1976년 국내 민간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금성사에 중앙연구소를 만들었다. 전사 차원에서 설립한 이 연구소에 첨단 장비, 국내외 우수 연구진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집행했다.

구 명예회장 재임 기간 설립된 연구소는 70여개에 이른다. “연구소를 잘 지어야 우수한 과학자가 온다”고 당부하며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연구 프로젝트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구 명예회장의 노력으로 LG그룹은 모태인 화학과 전자뿐 아니라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등 다양한 영역으로까지 발을 넓힐 수 있었다.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등 대표 제품들이 구 명예회장 재임 때 개발됐다.

1975년 구미공단에 컬러TV를 연간 50만대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설립한 데 이어 1976년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1980년대에는 미래 첨단기술 시대를 내다보고 컴퓨터와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만들었다.

석유화학 분야에서도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고, 1980년대 초 충북 청주에 종합 생활용품 공장을 건설했다.

구 명예회장은 해외로도 지평을 넓혀서 재임 기간 50여개의 해외 법인을 설립했다. 1982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에 세운 컬러TV 생산공장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의 해외 생산기지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조…은퇴 후 자연인으로
LG그룹은 구 명예회장이 취임한 1970년 매출 260억원에서 1995년 30조원 규모로 약 1150배 성장했다. 구 명예회장은 1995년 1월 럭키금성 명칭을 LG로 바꾼 뒤 장남인 구본무 회장에게 회장직을 넘기고 물러났다

구 명예회장은 1972년 초대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 1987년 제18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을 역임한 이력도 있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LG연암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며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는 한편 자연을 가까이하며 지냈다. 충남 천안 연암대학교 농장에 머무르며 버섯 연구를 비롯해 자연과 어우러진 취미에 열성을 쏟았다.

부인 하정임 여사는 2008년 1월에 별세했고, 지난해 5월 장남인 구본무 회장까지 먼저 떠나보냈다. 황원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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