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부부는 동지이자 가장 강한 적이다
칼럼-부부는 동지이자 가장 강한 적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17 16:0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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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산스님/진주 문산 여래암 주지
범산스님/진주 문산 여래암 주지-부부는 동지이자 가장 강한 적이다

우리는 인생을 진지하고도 참되게, 진실하고 성실하며 착하고 보람 있게, 아름답고 지혜롭게 살아가야한다. 옳고 그름을 현명하게 판단하여 흐뭇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자.

특히 부부는 서로가 사랑과 배려로서 감싸주며, 다정다감한 대화와 웃음 속에 살아가야한다. 남편은 하늘처럼 모든 걸 다 덮어 주고, 아내는 땅처럼 모든 걸 다 받아주면서, ‘내 인생은 아름다운 가’, ‘나는 잘 살고 있는 가’, ‘우리부부 이대로 좋은가’늘 돌아보며 살자.

인생은 100년 이내의 유한한 여행이다. 지금 누리고 있는 권좌와 살고 있는 집과 이 육신도 영원하지 못하며 잠시 머무르다가 언젠가는 떠나줘야 하는 임시거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까 참되고 진실 되게, 사리사욕 없이, 소박하고 늠름하고 굳세게 살아가자.

자신의 분수와 처지에 맞게 책임과 본분을 지켜가자. ‘아내 없는 남자는 고삐 없는 말이요, 남편 없는 여자는 키 없는 배’이다. 평화로운 가정유지를 위하여 부부는 서로를 이해해주어야 한다. 남편은 앞장서서 힘든 일을 하고, 아내는 뒤에서 위로하며 힘을 보태주자.

잠시라도 배우자에 대한 배신행위는 없어야한다. 순간의 배신행위를 하여도 그 사람은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다. 작은 실수라 하여 가볍게 여기거나 무시하지 말자.

애정 없는 결혼은 비극이다. 배우자는 눈으로만 보고 선택하지 말고 귀로서 선택을 하라.

미남 미녀(美男美女)나 늘씬한 외모(外貌)보다는 상대의 마음 씀씀이가 훨씬 중요하다.

부부는 서로가 자신의 절반은 죽이고, 절반만 살려야한다. 절반을 죽인다는 것은 희생, 절반을 살린다는 것은 사랑이다. 희생정신과 애정 없이 행복한 생활은 불가능하다.

서로에게 친절을 베풀어주면 많은 일을 하고도 피곤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이 난 것이다.

부부는 죽는 날까지 수많은 희로애락과 오욕이 닥칠 때마다 사랑하고 미워하며 밀고 당기는 싸움의 연속이며,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모든 것을 옆에서 정확하게 지켜보는 사이다.

이 세상에서 ‘나’의 장단점과 부끄러운 속내까지 속속들이 다 알고 있는 사람이 배우자다. 그래서 동지이면서도 가장 강한 적이 될 수 있다. 천하의 권력자 앞에 만인이 움츠려도 배우자는 ‘나’의 모든 장단점을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기죽지 않고 반항한 것이다.

비겁하게 살다가, 이혼이라도 당한 날이면 혹독한 보복을 가해오는 것이 부부사이다.

둘은 죽는 날까지 동거 동락해야 하므로 서로가 양심을 지키고 살아가면서 다툼이 있더라도 물고 뜯고 싸우지 말고, 건설적인 다툼만하라. 산다는 것은 인간의 길을 가는 것이다.

사람이면 양심과 체면과 도리를 저버리고 잔악한 행동을 하며, 짐승의 길을 가서는 안 된다. ‘나만 옳고 너는 잘못되었다’면 영원히 화합은 없다. 수시로 서로에게 고마움과 위로의 말을 전해보라. ‘파거불행(破車不行), 노인볼수(老人不修)’라, 부러진 수레는 움직일 수 없고 늙어지면 수행하기도 힘든 것이다. 늙어서 백발이 된 머리카락은 다시 검어질 수 없다.

이 몸이 늙어서 병이 들면 그때는 쓸쓸함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어지게 된다.

훗날을 위해서라도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지 말고, 부드러운 얼굴과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가 예의를 지키며 친절하고 편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살아가자.

이 세계는 유심소현(唯心所現)이다. 그래서 마음은 만물을 인식하고 주관하는 심왕(心王)이라는 것이다. 내 마음이 슬프고 괴로우면 아름다운 꽃과 하늘도 보이지 않는 법이다.

이 육체도 영원한 나의 몸이 아니라, 얼마 후에는 벗어놔야 할 일시적인 육신의 옷이다.

지상의 나그네들이여! 오늘도 부부화합 속에 행복한 가정을 창조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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