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플라세보 효과 노세보 효과
칼럼-플라세보 효과 노세보 효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23 15:5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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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남과학기술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플라세보 효과 노세보 효과

플라세보 효과(placebo effect). ‘속임약 효과’의 전용어이다. 믿음은 치유(治癒)의 강력한 도구다. 그런 잠재력을 극대화 하는 것이 플라세보 효과다. 믿음이 반복적인 사회적 의례와 결합되면 통증·정신질환·면역질환을 포함한 만성질환에 심오한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인간의 면역체계 역시 이렇게 조건화될 수 있다. 청양음료와 면역 조절제를 몇 번 같이 먹은 다음, 곧 면역 조절제를 빼고 청양음료만 마셔도 거의 80%의 면역조절 효과를 얻는다. 예를 들어 아스피린제가 들어 있는 두통약을 먹으면 두통이 사라진다. 그런 일을 몇 번 경험하게 되면 약을 삼키자마자, 심지어 아스피린제가 들어 있지 않은 약을 먹어도 그 즉시 두통이 사라진다. 이는 의미가 효과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한동안 효과가 좋아지는 유명 상표의 약을 복용하면 우리는 그 효과에 익숙해진다. 그러다가 같은 목적의 약이지만 이름 없는 더 싼 약으로 바꿔 복용하자 효과가 없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약 속의 화학물질이 효과가 없어서는 아니다. 특히 통증이나 우울증과 관련해 ‘싼’약을 복용한사람들이 효과가 떨어진다고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한 예로 새롭게 증명된 신약이 출시되고 특히 대대적인 선전과 홍보가 있을 경우, 그 전까지 멀쩡하게 효과가 좋았던 약이 잘 듣지 않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그 약에 대해 더 이상 신뢰를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미시건 대학의 인류학자 댄 모에드만 박사는 효가 더 낫다는 신약이 출시되었을 때 이미 효과가 입증된 기존 약들의 효과변화를 추적해봄으로써 이 점을 증명했다. 이렇게 한 치료제의 치유 잠재력은 그 약이 실제로 얼마나 잘 듣느냐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약의 상대적인 효과를 얼마나 믿느냐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제약회사들이 신약의 효력을 증명하기만 하면 수십억 달러를 들여 광고하는 것도 이해가 될 법하다. 광고는 판매고를 올려 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약의 효과도 올려준다. 그래서 제약회사들은 광고를 통해 고객의 의식적 무의식적 믿음을 키우는 것이다. 의과대학에서는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신약이 나오면 효과가 떨어지니 신약이 나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처방해라”라고 한다고 한다. 제약회사의 로비 영향이기도 하다.

반면에 노세보효과(Nocebo effect)란 실제로는 무해하지만 해롭다는 믿음 때문에 해로운 영향을 끼치는 물질을 가리킨다. 즉 어떤 것이 해롭다는 암시나 믿음이 약의 효과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의례와 믿음이 건강과 치유에 불러일으키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플라세보 반응의 반대 개념이다. 실험에 의해 약효가 입증된 약을 복용했음에도 환자가 그 약을 의심함으로써 약효가 사라지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심한 경우 그 부작용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환자와 의사들은 대체로 우리의 정신적·영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치유 혹은 손상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 현재의 의료체계는 이 정신적·영적 차원을 대체로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치료를 받은 후 효과가 일어나면 치료기간 동안 만들어지는 맥락과 의미보다 그때 주어진 특정한 치료법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든 의례 , 믿음, 사회적 학습의 조건화 과정이 치유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그와 똑 같은 과정이 치유를 방해할 수도 있다. 연구에 의하면 환자들의 회복율은 의사들의 부정적인 언급 하나만으로 거의 절반이 뚝 떨어져 버린다. 즉 의사들이 명확히 말하지 않고 미묘한 뉘앙스를 비치기만 해도 통증이 증가할 수 있다고 한다. 노세보효과가 통증에만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의 문화적 믿은들, 사회적 소통 속에 스며들어 있다.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이란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육체적·정신적·사회적으로 완전히 편안한 상태이다’라고 정의했다. 현미경과 생물과학의 발달로 인체의 신비는 상당부분 벗겨졌고 질병과 노화의 실마리도 풀리고 있다. 이제 로봇이 의사를 대신해 수술하고, 게놈지도를 풀어 개인의 유전적 특성을 밝히고, 인공지능이 의사보다 더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진정한 의학은 인간이 가진 병을 치료하기보다 병을 가진 인간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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