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욕 잔치
도민칼럼-욕 잔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23 16:1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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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욕 잔치

‘날강도 찜 쪄서 안주 삼고, 화냥년 경수(대소변) 받아 술 빚어먹고, 피똥 싸고 죽을 남원 사또 변학도와 사돈해서 천하잡놈 변강쇠 같은 손주 볼 놈’ 오래 전 경남 고성에 사는 어르신이 전국 욕쟁이 대회에 나와서 으뜸상을 받은 구절이다. 욕하는 소리 듣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지만 욕도 이리 차지게 하면 즐거운 배설이 된다. ‘똥 발라 오줌에 튀길 놈’이쯤 되면 화보다 웃음이 나온다.

한때는 욕쟁이 할머니집이 인기였다. 제 돈 내고 밥 먹으면서 일부러 욕을 들어가며 밥을 먹는 풍경, 요즘 아이들에게는 이해가 안 갈지 모르지만 우리에게 욕은 대리배설의 효과도 있었다. “집에 밥 놔두고 뭐 얻어먹으러 쳐왔어? 이왕 왔으니 허벌나게 쳐묵고 가잉“ 그러면서 한상 차려주는 인심에 배꼽 빠지게 웃다보면 어느 사이 밥이 다 먹어지고 식당을 나설 때 ”나가 한 말 다 이저 무거잉(내가 한 말 다 잊어버려라)“ 하는 살가운 인사의 마무리로 다시 그 집을 찾는다고 했다.

지금은 개최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전에는 광주민학회가 개최하는 전국 욕쟁이 대회가 있었다. 경남 고성 출신인 한국학의 거장 고 김열규 교수는 <우리 욕 좀 하고 살자고>라는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신체의 각 부분이 욕으로 표현되지만 그것은 정신을 귀하게 여기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고 했다, 어른들이 흔히 쓰던 ‘죽으면 썩을 살 아껴 뭐하냐’ 하시던 것처럼 대가리는 피도 안 마르고 발모가지는 게으르던 젊은 시절을 벗어나 이제 곰살맞은 욕 한 구절 해도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됐지만 우리는 모두 교양이 가득해 있다.

그렇다고 이제 실컷 욕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욕이 배설의 효과를 가져오려면 해학이 있어야 한다. 듣고 피식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상황에서 나와야 한다. 조선시대 얌전빼는 사회의 위선과 형식을 조롱하던 판소리의 한 대목으로 나오는 욕은 사람들을 웃게 한다. 욕은 정말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 해야 함께 속이 풀린다. 마음씨가 못되고 인간성이 고약하고 패륜을 저지르는 이에게는 욕으로 규범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도 날 것의 욕은 눈살이 찌푸려진다. 사람들 많은 데서 들으라고 하는 것보다 혼자 중얼거리듯이 하는 욕이 스트레스 날리는 데는 그만이다. 그 맑은 법정스님도 더러 혼잣말로 욕을 해서 마음을 풀었다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런 욕 ‘빨갱이 XX들은 다 죽여야 해. XX들 XX(을)를 뽑아버리고 불에 태워’ 백주대낮에 칼이 되어 날아오는 혀와 입술의 소리들이 지금 광화문에 국회에 가득하다고 한다. 동영상이 아닌 실제로 난 그 소리를 들었다. 맥박이 뛰는 아이를 살리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기보다 방치하여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너무 놀라 세월호 부모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찾아간 광화문에서 젊은 여자의 지휘를 받는 어른들의 입에서도 같은 악다구니의 말이 귀청이 따갑도록 들려왔다.

이런 그악스런 눈빛에 폭력이 더해지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욕도 한 방편이다, 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할 소리가 된다. 분명 어느 한 가정의 가장이고 모성애가 깊은 엄마일 텐데 어린 손주를 보면 안아주면서 곱고 예쁜 말을 가르쳐 줄 텐데 그들의 자녀들은 설마 우리 부모님이? 라고 상상도 하지 못할 텐데.

우리는 안다. 우리의 어른들을 누가 조종하고 거칠게 만드는지, 그러나 그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오로지 박근혜 대통령을 사모해서만이 아닌, 박정희 정권에 대한 향수만이 아닌, 그분들을 불러 모아 어르신들이 이 나라를 다 일으켜 세웠다고 부추기면서 요즘 젊은 것들에 대하여 적개심을 갖게 하고 이용하는 더러운 세력들과 더불어 일등만이 최고라고 다른 인성이나 공경심은 내버려두고 젊은이들에게 성공만을 강조하는 바람에 일어난 총체적 난국임을 그러니 모두가 이 지경에 대한 반성을 해야 한다.

어른을 공경하지 않는 사회가 된지 오래지만 어른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까지 사라지면 너무 팍팍하지 않은가! 우리 잠시 정치는 접어두고 어른들과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 경멸하다보면 경멸의 언어가 습관처럼 온다. 익살스런 말들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새해 첫 책은 유머에 관한 책을 사서 읽어야겠다. 좋은 욕이야 있겠는가마는 해학이 담긴 욕을 듣고 웃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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