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기억의 맹점
아침을 열며-기억의 맹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25 14:3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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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기억의 맹점

아버지의 시선이 초점을 잃었다/깊은 구덩이처럼 나를 향하던 눈빛마저 지웠다//아버지 저를 보세요/나 보여요//세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시선을 안으로 향한다는 것/지난 삶을 들여다보는 일일까//밥상을 엎던 옛날로 되돌아가/젊은 엄마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일까/아버지는 참회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독하게 먹었던 마음이 흔들린다//따뜻한 기억은 지워버리고/어둠만 남긴 나의 반쪽 기억이/아버지 생의 초점을 잃게 만든 것일까 (이주언 시인,‘기억의 맹점’)

시인은 임종이 임박한 아버지 곁에 있다. 그 아버지 젊었을 적에는 한 성질 했던 것 같다. 여기에는 나타나 있지는 않지만 호탕한 성질로 볼 때 술집에도 자주 출입하면서 마담의 엉덩이도 좀 두드렸을 것이고 화투도 좀 만졌지 않을까 싶다. 가끔 잃어버린 돈에 대한 허전함이나 혹은 가족들에게 미안함으로 집에 돌아와서는 오히려 애꿎은 엄마에게 화풀이도 좀 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마음이 좀 편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그러한 사실들을 지켜봐 왔던 시인의 눈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미움이나 심한 경우 증오심도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지않겠는가, 시(詩)라고 하는 것은 어차피 소설처럼 사건 전모를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메타포를 동원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었다. 그동안 밥상을 엎으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아내에게나 자식들에게 미안해했을까. 하지만 생의 종점에 도착했을 때쯤, 그동안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던 ‘미안하다’라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을 것이다. 그것은 어렸을 적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어른이 된 시인도 잘 알고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까지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엄마에 대한 연민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임종을 지키고 있는 시인이 먼저 무너지고 뉘우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가 다 누구에겐가에 미안해야 한다. 아무도 사마리아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없었던 것은 평생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좋은 점을 의도적으로 잊으려 했고 나쁜 기억만 살려서 아버지를 지나치게 미워한 자신이 오히려 참회해야 한다고 생각함을 짐작할 수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참회인가.

증자(曾子)가 임종에 임했을 때 그의 제자에게 ‘새가 죽을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을 때는 그 말이 착하다’라고 했다는데, 이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마지막 지점에 와서는 자신을 뒤돌아보며 모든 잘못을 반성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짐작하건대, 시인의 아버지는 무언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마음속으로 딸에게 ‘미안하다’라는 말을 수없이 하고 있었을 것이고, 시인 역시 아버지에게 수없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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