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칼럼-‘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면…
강남훈 칼럼-‘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27 10:4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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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면…

2019년이 저물어 간다. 앞으로 딱 5일 남았다.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기해년(己亥年)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희망’을 얘기하고, ‘공정’를 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365일은 이렇게 지나간다. 속절없이 흘러간 시간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찌 흐르는 세월을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세상의 변화와 한 호흡으로 살면 무심(無心)할 수 있으련만! 그래서 중국 고대의 사상가인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상선약수, 上善若水)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교수신문이 최근 교수 1046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올해의 사자성어로 한쪽이 사라지면 둘 다 죽게 되는 ‘운명공동체’라는 의미를 가진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택(33%)해 발표했다. 공명지조는 ‘아미타경’ 등 불교경전에 등장하는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로 문자 그대로 목숨을 함께하는 새다.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공멸하게 되는 운명공동체다. ‘정치가 좌우로 나뉘고 국민들도 편싸움에 동조하고 있다’며 이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두 번째로 많은 선택(29%)을 받은 사자성어는 어목혼주(魚目混珠)였다. 물고기 눈(魚目)이 마치 진주와 같아 분간하기 어렵다는 뜻으로 ‘가짜와 진짜가 마구 뒤섞여 있는 상태’를 말한다.

교수신문의 발표대로 올해 대한민국 사회는 극심한 혼돈으로 물들었다. 특히 ‘조국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은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갈라졌고, 여의도 정치는 실종됐다. 광화문에서는 ‘조국구속’, ‘대통령 퇴진’을, 서초동에서는 ‘조국수호’, ‘검찰개혁’을 외치며 세 달 가까이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졌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던 취임당시의 약속과는 달리 ‘진영의 수장처럼 행동한다’는 비난에 직면했었다. 극심한 국론분열을 가져왔던 조국사태는 본인이 법무부 장관직에서 물러남으로써 일단락됐지만 갈라진 민심은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조 전 장관은 ‘유재수 감찰무마’와 관련해 현재 구속위기에 놓여있다.

국회에선 ‘자기만 살려는 정치’가 1년 내내 계속되고 있다.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정국이다. 민주당과 군소정당이 함께하는 ‘4+1협의체’는 지역구(253석)와 비례대표(47석)는 현행대로 유지하고, 비례대표 30석에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연동률 50%)를 적용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합의해 본회의에 상정했다. 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로 맞대응했지만, 26일 0시를 기해 임시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자동종료 됐다. 이날 오후 2시부터 새 임시국회가 열려 선거법 통과는 기정사실화됐다. 검찰까지 ‘독소조항’(검찰 수사과정에서 발견된 공직자의 범죄정보는 모두 공수처에 통보한다)이라며 공개 반발하고 있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 검찰개혁 법안도 제1야당인 한국당이 저지하기엔 역부족이다. 여당이 ‘마음먹은 대로’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시인 김승희(1952~)는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라는 시에서 캄캄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다. 가장 낮은 곳에/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그래도라는 섬이 있다/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트리지 않고 사는 사람들/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부도가 나서 길거리로 쫓겨나고/뇌출혈로 쓰러져/말 한마디 못해도 가족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중환자실 환자 옆에서도/힘을 내어 웃으며 살아가는 가족들의 마음속/그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그런 마음들이 모여 사는 섬, 그래도/…/그래도라는 섬에서/그래도 부둥켜안고/그래도 손만 놓지 않는다면/언젠가 강을 다 건너 빛의 뗏목에 올라서리라/어디엔가 걱정 근심 다 내려놓은 평화로운/그래도 거기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는 접속부사인 ‘그래도’속 ‘도’를 섬 도(島)로 해석해 아무리 삶이 고달프고 죽음으로 내몰린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래도’결코 희망을 잃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2020년 새해에도 다시 희망을 얘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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