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존엄하게 죽을 권리
시론-존엄하게 죽을 권리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9.12.29 14:32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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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
박유동/경남도립거창대학교 총장-존엄하게 죽을 권리

한해가 저물어 간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 한때 웰빙 열풍이 불어 살아있는 동안 잘 먹고 잘사는 것에 도취되어 정작 인간의 삶에 마침표를 찍는 죽음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해왔던 것 같다. 모든 인간에게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한번 태어나는 것, 한번 죽는 것, 그리고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은 내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만큼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야만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살아있을 때 ‘웰빙’도 중요하지만 존엄하게 죽음을 택할 권리인 ‘웰다잉’도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노령화로 인해 전체 인구수 대비 65세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9%에 달한다. 노인 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은 OECD국가 중 1위이다. 지금 노인세대들은 급격한 산업화과정에서 젊음과 열정을 바쳐 일했고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하다 보니 정작 당신들의 노후는 준비를 하지 못했다. 가장 치열하게 살았고 자식들을 위해서 가장 많은 희생을 했지만 정작 자식들에게 자신들의 노후를 위탁하지 못하고 대부분은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부모님들이 처한 현실이다.

필자의 어머니는 내가 대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다. 이후 홀로된 아버지는 13년은 혼자서 사셨고 마지막 2년중 1년6개월을 우리집에서 함께 하셨고 마지막은 큰형님 집에서 보내다 돌아가셨다. 그 당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이 실시되기 이전이라 사설 요양원에 위탁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기도 했지만 내부모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 내 양심상 허용이 되지 않아 집에서 모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아버지를 집에 모시자고 했을 때 아내는 강하게 반대를 했다.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설득이 어렵다는 것을 느꼈고 아내에게 “이일을 하고 안하고는 당신이 선택할 문제지만 나는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를 절대 다른 사람 손에 맡길 수가 없다”고 최후통첩을 했다.

실제로 아버지를 모시면서 아내가 많은 고생을 했다. 나는 직장인이라 아침에 출근하면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이 많았고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시아버지와 씨름하면서 보내는 하루가 아마도 지옥같이 느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그 역할을 묵묵히 잘 수행해 주었고 지금 생각하면 그런 아내가 참 고맙게 느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저런 어려운 일들이 생기게 마련인데 크게 잘못되지 않고 무탈하게 살아가는 것은 아마도 돌아가신 아버지가 보살펴 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긴병에 효자없다”고 했다. 의식 없이 장기간 병석에 누워 있는 것은 환자 본인에게도 가족들에게도 큰 불행이다. 죽음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고통 없이 세상을 떠날 수는 없는가? 최근에 작고한 전 대우그룹 김우중회장은 고인의 평소 뜻을 존중해 인공호흡기,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고 존엄사를 선택했다. 안락사 제도가 없는 호주의 104세 생태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안락사제도가 있는 스위스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락사를 선택했다. 생명경시 풍조 만연 우려와 품위 있게 죽을 권리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죽음에 대한 선택 권리는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은 안락사제도가 없다. 그러나 2018년 연명의료 결정제도가 시행된 이후 1년 8개월 동안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선택한 사람이 7만여 명이라고 한다.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하려면 엄격한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가중 중요한 게 본인의 뜻이다. ‘내 마지막은 내가 결정한다’ 는 취지가 담겨있다. 생전에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거나 의사가 작성한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을 하여야 한다. 이런 사전행위가 없는 경우나 환자가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울 때는 가족 2명이 환자의 평소 생각을 추정해 진술하거나 가족 전원이 합의해야 한다.

사람은 한번 태어나면 언제가는 죽는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그 어느 누구도 이 법칙을 거스르지 못한다. 죽음이 축제는 아니지만 의식이 있을 때 존엄하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선택하고 준비하는 것은 나를 위하는 길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는 고귀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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