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아침을 열며-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05 15: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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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외적교수
이수정/창원대 교수·현 베이징사범대 외적교수-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 1-4)

신약성서 마태복음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다. 나는 이 부분이 예수의 공식 발언 이전에 등장하는 직접 발언이라는 점에서 좀 특별히 주목하는 편이다. 물론 여기 등장하는 ‘마귀’ 내지 ‘시험하는 자’가 어떤 존재인지 그와 예수의 이 은밀한 대화가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또 어떻게 마태에게 알려졌는지 그런 건 나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그냥 사실이라고 전제하고 들을 수밖에 없다. 예수를 좋아하고 존경하니까. 단, 이 발언의 내용은 대단히 사실적이다. 그리고 대단히 철학적이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 이 말을 좀 음미해보기로 하자.

번역은 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경의 최초 한글번역자라는 나와 동명이인 이수정의 번역인지 그쪽 전문가가 아니라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설령 그렇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색하기 때문이다. 요즘 떡으로만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밥’이라고 하면 그나마 훨씬 낫다. 지금 시대라면 ‘빵’이 가장 적절한 번역일 것이다. 하여간 번역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냥 여담이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다. 여기서 예수가 언급한 ‘떡’은 ‘음식’을 가리킨다. ‘먹을 것’이다. 그걸로만 살 수는 없고 그걸로만 살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물론,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 턱이 없다.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실제로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도 30여년간 먹고 살았고, 성서에 보면 빵 한 조각으로 수백명을 먹인 이야기도 나온다. 최후의 만찬도 결국은 먹는 이야기다. 그러니 예수 본인도 먹는 것의 중요성을 몰랐을 턱이 없다. 작가 김훈의 글 ‘밥벌이의 어려움’은 그 의미를 확실히 부각시켜주기도 한다. 그렇다면 예수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일까.

우선은 이 ‘밥벌이’에 온 삶을 다 바치는 우리들의 삶의 행태를 경계하기 위함이다. 이 밥벌이는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돈벌이’와 연결된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다’라는 세간의 말이 그것의 진실성을 알려준다) 그래서 예수가 말한 ‘떡’은 결국 인간의 모든 물질적 지향을 상징한다. 떡-밥-빵-돈-물질은 다른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이것 때문이라면 모든 악들이 다 용인되는 것이다. 빵 때문에 도둑질을 한 장발장의 이야기가 그것을 상징한다. 그 도둑질의 연장선에 모든 악들이 줄줄이 엮여 있다. 거짓말-횡령-사기-폭행...그리고 심지어 살인까지. 얼마나 많은 악들이 우리 인간의 물질지향에 연유하는지를 차분히 생각해보면 실로 경악을 금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런 것들이 이 땅 여기저기에 끔찍한 지옥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래서다. 그래서 예수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고 경계한 것이다. 빵과 그로 인한 악에 대한 반대 내지 대안의 제시인 셈이다. 그게 말씀과 선인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 이것도 상징이다. 모든 선의 상징이다. 신(神)은 곧 모든 선(善)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는 창세기의 저 유명한 언급이 그 근거가 된다) 이 ‘말씀’에는 구약에 등장하는 여호와의 말씀은 물론, 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언어들도 다 포함되고, ‘말씀’의 그리스어 원어인 ‘로고스’ 즉 ‘이성’도 다 포함된다. 이성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즉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아름답고 추함, 그런 걸 판별해서 진-선-미를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인간이라는 말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성서에 보면 차고 넘친다. 예수 본인이 남긴 ‘말씀’만 해도 사실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그중 단어 몇 개만 받아들이고 실천해도 이미 마귀의 손아귀를 벗어난다. 사랑, 용서, 허심, 온유, 화평, 긍휼, 이른바 산상수훈에만 해도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많다. 넘쳐난다. 그래서 예수는 위대한 것이다.

그는 30대 청년이었고 나는 지금 60대 중반이지만, 나는 기꺼이 그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그의 발등에 입을 맞출 수 있다. 참고로 나는 공식적인 크리스천이 아니다. 다만 그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의 철학이야말로 궁극의 철학이라고 확신하는, 일개 철학자일 뿐이다.

그가 말한 ‘말씀으로 살 것이라’야말로 그런 궁극의 철학이다. 이런 철학의 재건이 절실한 요즈음이다. 보라, 세상에 넘치는 저 ‘떡’의 지향을! 그리고 그로 인한 저 보무도 당당한 악들의 행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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