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바다 고시원
아침을 열며-바다 고시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07 16:1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바다 고시원

<바다 고시원>은 김진 시인의 첫 시집이다. 고시원이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천천히 아려온다. 오래전 고시촌이라는 말을 들을 때면 모종의 설렘과 긴장이 되는 그 말이 사라지고 생긴 고시원은 다른 감으로 다가온 것이다. 고시촌이란 신분을 도약시켜줄 사법고시라든가 행정고시 같은 어려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꿈을 키우는 곳이었지만 지금의 고시원은 대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방이기에 드는 감정일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 시집을 처음 대하며 드는 마음 역시 시를 읽기도 전에 은근하게 아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수록된 시를 모두 읽고 나서도 그런 마음이 든다. 더해서 안타까움도 진했다. 그것은 전혀 낯선 감정이 아니라 너무도 익숙한 것이라는 게 조금 슬프기까지 하다. 왜 우리는 이렇게 오래 가난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서 이 시집의 독법을 나름 달리했다. 이 시집을 읽는 독자가 마음이 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고.

4부로 나눈 시집의 2부 첫번째 시 ‘이름이 뭐예요’를 읽을 때쯤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실마리가 약간은 구체적으로 보였다. 시는 ‘누구에게 한 번은 진정으로 불린 이름이었나요’에서 마무리 됐다. 이를 읽으며 뜨끔했다. 곧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세상이 모두 서운했다. 그리고 곧이어, “니가 먼저 내 이름 좀 먼저 불러주면 어디가 덧나?” 하는 반발이 따라왔다. 난 사소하지만 시인이라도 나를 불러 주었으면. ‘2인실’을 읽을 때쯤엔 이 시집을 끝까지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는 옆에 입원한 환자의 간밤 죽음을 모른 척한 걸 ‘마지막 시선이 막을 치고 있는 것을 모르게 할 것을’하고 후회하는 시다. 과연 이 시집은 끝내 무기력하게 후회만 할 것인지, 기어이 이타성을 발휘해 타인의 불행에 참여하고 위로해낼 것이지 에 대해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끝내 타자의 불행에 참여하지도 따라서 야무지게 슬퍼하지도 못했다.

이후로도 시는 ‘미로’에서는 시가 어지럽고 ‘잃어버리다’에서는 길을 잃고 ‘엄마 엄마 엄마’ 하고 울기도 한다. ‘낮잠’에서는 ‘해가 질 때까지 재첩을 잡아도’,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어요’ 라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이제 남쪽의 습지 ‘주남저수지’에 와서는 모든 것이 단체로 앓다가 그 아픔 이겨내지도 못하고 ‘이내 어둠 속에 갇혀’버리고 만다. 그러나 ‘싸락눈’만한 ‘저 생명력!’하나는 단연코 부여잡았으니 천생 시인의 팔자여라.

예술은, 특히 시는 징징대서는 안 되겠다. 가장 절망적일 때조차도 희망을 노래해야겠다. 김소월은 연인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도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고. 그래도 갈 테면 내 몸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라며 단단한 결기를 보이고 그 독한 결기에 독자는 각자의 절망을 위로받는다. 김진 시인은 세상에 오자마자 스러지는 싸락눈의 저 작은 생명에 집중하는 집요함이 있다. 부디 그 집요함으로 우리를 단단히 격려해주시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