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카페의 여인
진주성-카페의 여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07 16:10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카페의 여인

겨울을 좋아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난로가 있는 다방이 있어서였다. 바바리코트의 깃을 세워 칼바람을 가리고 다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후끈한 열기와 함께 커피 내음과 매캐한 담배 냄새가 마담의 인사말에 섞여 얼굴을 화끈하게 마중을 했다. 주전자가 펄펄 끓어 뚜껑이 들썩거리는 난로에는 다닥다닥! 소리를 내며 소나무 장작이 난로를 시뻘겋게 달구며 둘러앉은 사람들의 얼굴까지도 빨갛게 달구었다. 둘러앉은 사람들이 서로서로 자리를 좁혀서 틈새를 내어준다. 밀쳐두었던 빈 의자도 당겨준다. 서로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보리차를 호호 불어서 따끈한 정겨움을 마시면 ‘바람 많이 불지요?’하고 모르는 사람이 묻는다. ‘지리산 눈바람이 차갑습니다’하고 모르는 사람도 답을 한다. ‘삼천포서 배가 못 뜨고 육십령은 차가 못 간다네요’ 하고 교통정보까지 알려준다. 신문을 보고 있던 모르는 사람이다. 물컵이 비면 옆 사람이 주전자의 물을 따라준다. 모르는 사람이다. 모르는 사람들이 모르는 사람들과 정을 나눈다. 그때는 그랬었다. 모르는 사람도 좋을 때였다. 그 좋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르는 사람들을 경계의 울 밖으로 밀어내고 단절의 성에서 고립된 오늘도 장작 난로는 기억의 저편에서 추억으로 불타고 있어 간간이 뜬금없는 생각에 카페에 들린다. 창문을 뚫고 내리꽂히는 햇살에 무지개가 그려지던 담배연기 속으로 모르는 사람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요즘의 카페는 선불로 주문하고 셀프서빙을 해야 하는 카운터의 싸늘한 냉기가 가슴을 시리게 한다. 그래도 어쩌랴, 커피향의 위로가 그나마 고맙다. 시린 가슴을 달래며 더는 외롭지 않으려고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옥천사 들머리에 비치파라솔 하나를 지붕으로 삼고 커피 핸드밀로 커피콩을 갈아서 솔향기를 녹여 낭만을 파는 노천카페이다.

셈과의 작별을 오래전에 한 바리스타는 혹한기의 임시휴업이라며 시인의 그린카페로 안내했다. 물비늘 반짝거리는 수평선을 섬과 섬 사이에 그어놓고 갯바람 불어오는 당항포 가는 길의 배둔 들머리에 달빛이 좋아서 밤마다 달꽃으로 피어나 모르는 사람들의 가슴에 담아 줄 시(詩)를 쓰며 달꽂의 향기를 녹여서 커피를 내리는 카페의 여인이다. 커피를 마시는 모르는 사람들이 까닭 없이 좋아서 커피를 내린다. 바람같이 왔다가 흔적 없이 가야 할 모르는 사람들, 혼자 앉은 사람이면 외로움 좋고, 마주 앉은 사람이면 정겨움이 좋아서 달꽃향기의 시인 카페의 여인은 가슴앓이 한 시를 쓰며 커피를 내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