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경남 최초의 사천 신간회 활동
진주성-경남 최초의 사천 신간회 활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08 16: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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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경남 최초의 사천 신간회 활동

경남 지역 신간회 활동은 사천에서 가장 먼저 시작했다. 신간회는 일제가 승인한 단체이지만 민족 대동단결과 투쟁을 위해 전 민족 대표들이 결성한 전국 최대 규모의 항일운동 단체였다.

본부는 1927년 1월 19일 27인의 발기하여 다음 달인 2월 15일 서울 종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역사적인 신간회가 창립되었다.

이 날 창립대회는 250여 명의 회원이 참석했는데 방청객까지 합하여 1000여명이 넘는 대성황을 이루었다.

조선일보 부사장 신석우가 임시의장이 되고 서기를 선출하고 경과 보고가 있었다. 회장에 이상재, 부회장에 홍명희 등을 선출했다.

본부 발기인과 중앙위원 및 간사 55명중에 유림대표 4명이 들었다. 또 진주출신 2명 즉 하재화(1860~1947)정태석(1870~1928년)등이 들었다.

두명은 생원 진사에 각각 합격한 학자로 항일정신이 분명해 교육 봉사에 앞장선 이들이다.

이들 두 명의 교육을 받은 학생 중에 김의진, 박남준, 하용진, 강휘생 등이 들었다.

신간회 사천지회는 1927년 6월 19일 오전 10시에 개최하고 회비는 30전. 회원 자격은 20세 이상 조선 청년으로 했다.

사천보통학교 강당에서 개최되었고 창립대회는 오후 1시에 시작되었다.

준비 위원 박남준의 의미심장한 개회사가 있었고 준비 과정을 설명했다.

지회장은 하용수(1892~1963)부회장에 김준호가 선출되었고 총무간사에 박남준. 상무 간사에 이윤조(1906~1959)가 선출되었다.

상무 간사로 선출된 김학권(1906~1970)은 진주 나동 출신 부호인 김기태의 가내 집사로 일했다. 자녀 김기찬 김기준은 용현면 정수사 주지승이다.

1927년 7월 22일 총무 간사회를 개최하고 통영에서 친일 단체가 신문기자를 폭행하자 이를 조사해 악질 죄상을 온 세상에 알렸다. 이어 순회 강연회를 개최하는 일 등을 논의하였다.

회장이 적극성이 없자 박남준, 강휘생, 서태권, 강종래 등이 6개월 만에 총회를 개최해 임원을 개선했다.

이들은 소작인 착취사건, 유치원 건축을 실시, 사천 소년회 문제. 회원 모집에 관한 것을 논의하고 회장에 박남준, 부회장은 진갑생을 선출하고 기타 이동우, 김봉현, 임순백, 최병민, 강휘생, 김학권, 박남섭, 황성칠, 정규한, 홍윤권, 강계수 등을 선출해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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