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까치밥
진주성-까치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12 16:2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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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
동봉스님/진주 여래사 주지·전 진주사암연합회 회장-까치밥

요즈음 농촌 마을이나 감 농원 근처를 지나다 보면 감나무 위에 빨갛게 얼어붙은 홍시가 한 두개씩 달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것은 이미 흐물흐물해져 꼭지만 남기고 빠지고 없는 것도 있지만 아직도 반쯤이나 성한 채로 달려 있는 홍시도 있다. 이것은 바로 감나무 주인이 수확을 하면서 남겨 놓은 ‘까치밥’이다.

우리 선조들은 예로부터 감을 딸 때 까치밥을 남겨두었으며, 콩 세 알을 심으면 하나는 새와 짐승, 하나는 땅속 벌레, 그리고 나머지 하나를 사람의 몫으로 생각할 정도로 배려와 상생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집집마다 늙은 감나무 가지 끝에 남겨 놓은 까치밥이 새하얀 함박눈을 배경으로 붉은 모습을 드러내는 한겨울의 정취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홍시를 까치밥으로 남겨두는 것은 추운 겨울에 혹시 까치가 먹을 것이 없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까치의 겨울나기를 염려하는 마음이 곧 사랑이다. 사람들의 이 같은 태도는 까치를 자신처럼 생명체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까치를 자신의 생명처럼 생각하는 생명의식이 곧 생태의식의 출발이다. 까치밥은 날짐승에 대한 인간들의 ‘배려와 상생’을 상징한다. 우리 선조들은 지금의 풍요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먹을 것이 부족해 엄청나게 어렵고 궁핍한 생활을 하는 와중에도 까치밥을 통해 날짐승까지 챙겨주는 사랑나눔과 아량을 갖추고 있었다.

불교에서는 짐승도 인간과 같은 생명체로 여기고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익충, 해충이라는 개념도 인간 중심적인 것이지만 그들과 인간은 모두 연결된 생명체로 어쩌면 인간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모든 생명들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야만 한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살생을 금지하며 일반신도들에게도 과도한 육식을 경계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세상은 인간의 전유물이 아닌데 인간이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나 인간중심적이고 잔혹하다. 절대자유와 평등사상에 입각해 생명도 높고 낮음을 두지 않아야 한다.

요즘 사회에서 까치밥의 여유는 사라진 지 오래다. 대신 승자독식의 시대가 판을 치면서 이긴 자가 모든 것을 쓸어 간다. 승자가 까치밥까지 독식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세상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곳곳에서 갈등과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모두들 자기와 자기편의 이익을 챙기기 위한 주장에만 목청을 높이고 있다. 엄동설한에 까치밥에 담긴 따뜻한 사랑이 그래서 더욱 그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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