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훈 칼럼-버려야 산다
강남훈 칼럼-버려야 산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16 18:07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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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

강남훈/본사 부사장·주필-버려야 산다


중국 고대의 사상가인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48장에서 배움과 도에 대해 이야기 했다. ‘배움(學)의 목표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다(위학일익, 爲學日益). 도(道)의 목표는 날마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이다(위도일손, 爲道日損).’ 그러면서 날마다 버리는 것(日損), 이것이 진정 도를 행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노자의 ‘버림의 미학’은 기존 채움의 사회질서에 대한 새로운 가치의 혁신이었다. 노자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 역시 오늘날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창고를 채우고, 땅을 넓히고, 지위를 높이고, 권력을 높이기 위한 ‘채움’의 무한 경쟁이었다.

노자는 ‘비움’의 결과를 이렇게 얘기했다. ‘버리고 또 버리다 보면 끝내는 무위(無爲)의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당시 모든 지도자들이 강요하고, 명령하고, 간섭해서 조직을 이끄는 것이 가장 위대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노자는 지도자의 ‘무위의 리더십’이야 말로 남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한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가치의 혁신이라고 생각했다. 비운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끊임없이 권력을 추구하는 오늘의 정치에서는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올 4·15총선을 앞두고 야권의 보수대통합을 위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는 지난 15일 2차 회의를 열고 ‘중도·보수 세력의 통합신당 창당’이라는 목표를 재확인했다. 이날 회의에서 혁통위는 “문재인 정권의 일방독주를 심판하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대안세력을 만들기 위해 중도·보수 세력의 통합신당을 목표로 노력 한다”는데 합의했다. 혁통위는 14명의 위원으로 출발했다.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 무소속 이언주 의원,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에서 참여한 인사들은 통합의 진정성을 보이는 차원에서 이번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보수재건 3원칙을 놓고 한국당과 새보수당이 삐걱됐지만, 한국당이 이를 수용하면서 대화는 시작됐다.

출범선언 닷새만인 지난 14일 첫 회의를 연 혁통위는 현 정권을 무모하고, 무도하고, 무지한 ‘3무(無) 정권’(박형준 위원장)으로 규정했다. 박 위원장은 “그동안 보수는 ‘내 탓이오’ 보다는 ‘네 탓이오’를 외치며 서로에 대해 손가락질 했다”면서 “이제 자성의 자세로 혁신과 통합의 대의를 실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통합세력의 출범 시기는 오는 2월10일 전후로 잡았다. 현재 혁통위의 화두는 ‘내려놓겠다’는 것이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15일 “바닥까지 갔는데 더 내려놓지 못할게 뭐가 있겠나”라며 “더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 드려야한다”고 했다. 새보수당 유승민 의원도 이날 “총선에서 진정한 승리를 위해선 모든 걸 내려놓고 보수의 승리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준비가 돼 있어야한다”고 했다.

노자가 얘기했던 ‘버림의 미학’을 이제야 깨달은 것일까? 아니면 너무 절박해 각자 한 마디씩 하는 ‘립 서비스’일까? 이들의 속내를 정확히 가름할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버리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이다. 여권은 총선을 향해 총 진군(進軍)하고 있다. 2년8개월 동안 국무총리를 지낸 이낙연 전 총리가 지난 15일 더불어민주당에 복귀했고, ‘문의 남자’인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과 대변인 등 청와대 인사들이 줄줄이 총선출마 채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 수석, 비서관, 행정관 등을 지낸 60여명이 이번 총선에 뛰어든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장차관 출신 등을 합하면 총력전이다. 윤 전 실장은 지난 13일 tbs에 출연해 “이번 총선에서 진보개혁 세력이 원내 과반을 차지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청와대 등 보수를 이길 수 있는 유능한 사람들이 다 나와야한다. 총동원령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섬뜩한 얘기다. 보수가 왜 버려야 사는지 그 자명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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