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돈과 숫자
도민칼럼-돈과 숫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21 16:1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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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돈과 숫자

“어디 돈 돈 봅시다. 돈 봐”

“놔두어라 이 사람아, 이 돈 근본을 자네 아나,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퀴처럼 둥글둥글 생긴 돈, 생살지권(生殺之權)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 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돈 도오온 돈, 돈 돈 돈 돈 봐라! 여보 마누라 이 돈 가지고 고기 사서 육죽을 누그럼하게 열한 통만 쑤소”

아이도 한 통, 어른도 한 통, 각기 한 통씩을 먹여 놓으니, 식곤증이 나서 앉은자리에서 고주배기잠을 자는디, 죽 멀국이 코끝에서 소주 후주 내리듯 댕강댕강 허것다.

판소리 ‘흥보가’ 중에서 흥부가 매품을 팔기로 하고 미리 받아온 거마비를 마누라에게 내놓으며 나누는 대목이다. 목숨도 왔다 갔다 하게 하는 돈, 부와 명예도 가져다주는 돈, 고기 넣은 죽을 끓여 아이들과 나눠 먹고는 얼마나 굶다가 먹었는지 죽 한 그릇에도 식곤증이 생겨 앉은 그 자리에서 눕지도 못하고 잠을 자는 식구들, 그 코끝에서 술 만들어낼 때 알콜 뚝뚝 떨어지듯 죽 국물이 뚝뚝 떨어지는 풍경이 참 안쓰럽고 한가롭다.

진짜 새해를 맞는 날이 낼모레 설이다. 경자년(更子年)이 시작되는 것이다. 애꿎은 경자가 욕을 먹는다고 우스갯소리들을 하며 새해를 맞는다. 쥐의 해는 다산과 번영의 해라고 여기저기서 기운 돋워주는 소리를 한다. 그래서 흥부의 돈타령을 한번 들어봤는데 참, 돈이라는 것이 애인과 같아서 너무 쫒으면 달아나고 관심이 없으면 붙어있지를 않고 없어서도 안 되겠고 너무 많아도 신경 쓰이고 자급자족을 하던 원시시대가 아닌 이상 ‘돈’은 우리와 떨어지기 어려운 물건이 되어있다.

새해 나도 생생활활(生生活活)하는 이야기를 하려고 돈 이야기 먼저 꺼내보지만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아우성이 들려온다. 명절 전이면 노동부에서 밀린 임금을 주라는 지침이 내려온단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지인의 페이스북을 보니 올해는 어려워 임금을 받을지 모르겠단다. 오랜 관계를 맺으며 지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정이나 고소도 어려울 테고 그냥 견딜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그런데 세상은 재밌어서 누구는 선물포장으로 일손이 없어 난리라고 한다. 물론 자기가 원하는 이문과는 상관없어 그도 일이 끝나면 죽을 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돈’을 말하면 입이 헤벌쭉 벌려지며 좋아 죽는 소리를 하는 이보다 한숨이 먼저 들리니 어차피 돈이라는 것, 그러려니 하며 애인 어르듯 잘 버는 궁리와 잘 쓰는 궁리를 동시에 하는 건 어떨까? 동양학에 일견이 있는 <사주명리학이야기>의 조용헌 선생을 인터뷰하며 연재를 할 때 에피소드로 해 준 이야기가 하나 있다. 누구라고 하면 알만한 재벌을 만나 사주를 보니 거지팔자여서 고개를 갸웃했단다.

그런데 그의 하는 냥을 보니 남들은 검소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회사 구내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고 돈 씀씀이도 인색해서 ‘아! 저 사람 돈은 그냥 숫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런 이가 권력도 잡고 싶어 하지만, 어려울 거라고 했다.

우리는 실상 돈 때문에 힘든 게 아니고 숫자 때문에 힘든지도 모른다. 당장 집안에 빨간 차압 딱지가 붙어 힘든 게 아니고 붙을까봐 힘들고 잘못될까봐 힘들고 어려워 질까봐 걱정이 가득하다. 힘들지 어떨지 모르는 건 내일인데 오늘 힘이 든다. 그래서 내일이 오늘이 되면 다시 힘이 들고 그래서 매일매일 힘이 든다. 정말 힘든 사람들은 입 밖으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세 모녀가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바라보는 대로 세상은 움직인다고 했다. 바이크를 타는 지리산시인 이원규의 말대로 왼쪽을 보면 바퀴가 왼쪽으로 나가고 오른쪽을 보면 바퀴가 오른쪽으로 간다는데 정말 현실의 걱정보다 앞으로를 걱정하면서 희망이 없다고 하지 말고 ‘까이꺼!’ 정신으로 서로 있는 걸 좀 나눠먹으면서 언젠가 잘 되면 신세도 갚겠다는 마음으로 경자년을 맞이하자!

우리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는 지난해 학교가 적자를 봐서 한 달에 1박2일씩 수업을 하고 년봉 120만원을 고작 받아가는 교사들이 그나마 10만원을 다시 학교에 반환하는 지경을 맞이하고도 새해를 희망차게 맞는다. 세상에는 돈이 전부가 아닌 인생도 많다. 힘들어도 문화예술인의 작품을 구매해주는 이도 있다. 새해 첫날은 좀 높은 곳으로 올라가 가슴에 시원한 바람을 통과시키며 속을 풀어내시라고 지리산에서 기원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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