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가장 낮게 나는 새
시와 함께하는 세상-가장 낮게 나는 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22 16:12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가장 낮게 나는 새

깊은 밤 남자 우는 소리를 들었다. 현관, 복도, 계단에 서서 “에이, 울음소리 아니잖아” 그렇게 가다 서다 놀이터까지 갔다. 거기, 한 사내 모래바닥에 머리 처박고 엄니, 엄니, 가로등 없는 데서 제 속에 성냥불 켜대듯 깜박깜박 운다. 한참 묵묵히 섰다 돌아와 뒤척대다 잠들었다.

아침 상머리 아이도 엄마도 웬 울음소리냐는 거다. 말 꺼낸 나마저 문득 그게 그럼 꿈이었나 했다. 그러나 손 내밀까 말까 망설이며 끝내 깍지 못 푼 팔뚝에 오소소 돋던 소름 안 지워져 아침 길에 슬쩍 보니 바로 거기, 한 사내 머리로 땅을 뚫고 나가려던 흔적, 동그마니 패었다.

(이면우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

대전에서 사는 시인은 소위 생의 바닥이라고 하는 단계까지 내려간 본 사람이다. 보일러 수리공이자 건축배관공에다 학력은 중졸 그리고 마흔 넘은 나이에 시를 쓰기 시작했으며 신춘문예는 꿈도 못 꾸다가 어느 문인의 눈에 발탁되어 세상에 등장했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시인이다. 오래전에 읽은 시(詩)인데 그의 특이한 이력도 이력이지만 작품론적 입장에서도 많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도 한 번씩 읽어 본다.

“가장 높이 나는 새가 가장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라고 했던 리처드 바크(Richard Bach)의 말을 차운(次韻)하여, “가장 낮게 나는 새가 가장 자세하게 볼 수 있다”라고 한다면 말이 될지 모르겠다. 이 시를 읽어 보면 왠지 가장 낮은 위치에서 우리네 삶을 꼼꼼히 살펴봐야 인생에 관해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한밤중에 남자가 울고 있다. 이 남자 분명 한 가정의 가장인 것 같은데, 잠결에 들은 울음소리가 무심하지 않을 것 같아서 아파트 베란다에 나가 귀를 기울여보니, 그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긴가민가하여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까지 가보니, 거기서 한 사나이가 어머니를 부르며 목을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곳에서 울고 있는 사나이를 차마 가까이 가서 말도 붙일 수 없는 형편인지라, 묵묵히 지켜만 보다가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지만, 시인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이 어려운 시대에 먹고 살기가 참 팍팍했을 것이고, 가정마저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와서야, 그 남자 혼자 목 놓아 울고 있었으리라. 생의 바닥에서 힘겹게 가장의 역할을 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측면에서 보면 그 남자의 아픈 가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남자 어디 한둘인가 싶지만, 시인은 가슴 속에 있던 묵직한 뭔가가 목구멍으로 올라오고 있는 듯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으리라.

아침 식사 시간에 가족들에게 어제저녁의 사건을 말하니, 곯아떨어졌던 아내나 아이는 전혀 눈치를 못 채고 의아해하자 시인 자신도 꿈을 꾼 것인가 여겨 어린이 놀이터에 가보았더니, 모랫바닥에 사내가 머리를 박았던 자국이 선명하지 않은가. 그러면서 어제저녁에는 왜 깍지를 하고 있던 손을 풀어 그 사내에게 손 한번 내밀지 못했던가를 자책하면서 마무리를 하고 있다.

현재 사회경제적으로 사정이 매우 좋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젊은이들은 직장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직장이 없으니 결혼은 생각도 못 하는 지경이 되며, 요행히 결혼했다 하더라도 아기를 가지기는 무척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하루빨리 이 길고 어두운 터널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밝은 새 시대가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다. 오늘 아침 이면우의 시가 많이 와 닿는 것은 왜일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