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비가 오는 날엔
진주성-비가 오는 날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27 16:1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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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
황용옥/진주 커피플라워 대표-비가 오는 날엔

겨울비가 봄비처럼 달콤하다.

함박눈이 내리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을 하얗게 뒤 덮어 가장 먼저 발자욱을 남기는 즐거움이나 뜨거운 열기를 찾아다니는 겨울다운 겨울을 올해는 보지 못했다.

날씨 또한 이전처럼 손발을 부르트게 하거나 빨랫줄에 걸어둔 빨래가 동태처럼 꽁꽁 언 것을 보기가 어렵다.

가둬둔 논에 얼음 위에 썰매를 타다 옷을 다 버렸다고 엄마에게 혼이 나고는 뜨끈한 아랫목에 몸을 들여다 놓으면 그 보다 따뜻한 찜질방은 없었고, 매라도 한 대 맞고는 아랫목에 이불 덥고 누워있으면 그 또한 천국 같은 달콤한 꿀잠은 없었던 것 같다.

처마 밑으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천정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자장가처럼 들리기도 하고 자연이 들려주는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향연처럼 황홀하기도 하다.

다들 비오는 날에 커피 한잔이 최고라고 한다.

다 큰 어른이 되어 어머니에게 등짝이라도 한 대 맞을 일도 없고 뜨끈한 아랫목도 등을 지질일도 없어졌지만 이전의 추억의 향수의 느낌을 홀로 즐긴다면 고구마 향이 나는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 한 잔이면 될 듯 하다.

살짝 고구마 향 나도록 로스팅 된 커피를 진하게 내려 마시면 어머니에게 혼나서 흐느적거리며 이불 둘러쓰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나고, 연하게 내려 마시면 늦은 오후 꿈잠을 꾸는 듯 한 감미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사치라도 해서 예멘 커피를 마시노라면 썰매로 탄 뒤 양말 말리면서 피워 둔 장작불에 잘 익은 고구마를 먹는 듯한 느낌이 난다.

노릇하게 잘 익은 고구마 먹으며 가장 빠르게 달리는 썰매의 성능 향상을 자랑하면 세상 두려움 없는 한 시절의 어느 한 겨울을 지내는 듯한 짙은 향수에 빠져 들게 된다.

사람의 몸의 60% 수분이고 10%로 부족해도 사망에 이른다고 하니 본능적인 수분의 섭취는 필연이고 수분 섭취를 어떻게 마시고 즐기느냐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문화적인 행복이다.

새싹처럼의 녹차를 마셔도 좋고 원초적인 향의 깊은 발효차를 마셔도 되고 기능성을 더한 허브차도 좋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분을 섭취할 것이고 여유와 삶의 질적인 행복을 누릴 것이라면 차를 마시는 것도 좋다.

비가 오면, 마음이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온 몸으로 동물적인 수분이 필요해서 일까?

겨울답지 않은 봄비이건 봄이 오지 않은 겨울비이건 빗방울의 울림과 그로 인한 삶의 질적인 여유와 즐거움이 있으니 이 보다 더 큰 행복한 것 없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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