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산남 의병장 충효의 별 정용기
진주성-산남 의병장 충효의 별 정용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1.29 17: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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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산남 의병장 충효의 별 정용기

정용기(鄭鏞基)의병장은 또 다른 의병장 정환직의 장남이다.

정용기(1862~1907년)의병장은 국채보상운동에 동참하였고 내부대신 오적 이지용을 탄핵하는 글을 발표하고 충정공 민영환을 추모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1906년 각 지역에서 모인 군중으로부터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어 북상을 계속해 진출하다가 부친이 일제에 의해 피체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되돌아가다가 일본 헌병에 피체되고 보니 부친께서 피체되었다는 말은 일제의 간계였다.

왕의 특사로 석방된 그는 북동산에서 400여명의 의병대장이 되어 적군을 물리쳤다.

매국노 5명과 일본의 통감부 이등박문을 체포해 처단하기로 맹세했다.
일본군이 본적지 본가를 습격해 불을 지르자 추격군을 파견해 1명을 사살하기도 했다.

1908년 10월 일본군이 내습한다는 척후병의 보고에 따라 좌우영장 이석, 연습장 우재룡 등이 세 방면으로 나누어 작작령에 잠복해 기다리다가 전군을 물리쳤다.

또다시 적군이 내습하자 작전을 지시했으나 후군의 실수로 계획이 실패했다. 그러나 곧 의병을 독촉하여 입암, 원손 등지에 매복해 있다가 적을 물리쳤다.
일본군이 우수한 무기로 쳐들어오자 이한구, 손영각, 권규섭 등과 함께 적탄을 맞고 장렬하게 순국했다.

이때 맹렬한 부장급 의병은 다음과 같다. 손영각(1855~1907년)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됨. 권규섭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됨.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소모장 정순기, 도총장 이종근, 선봉장 홍귀섭, 후봉장 서종락, 좌영장 이경구, 우영장 김태언, 연습장 이규필 등으로 조직되었다.

중군장 이한구(1870~1907년)선생은 1905년 11월에 을사조약이 늑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정용기 대장과 의병을 일으킬 것을 상의하여 1906년 4월 동대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일본군 분파소장을 생포하고 적군 3명을 사살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정부는 이한구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정용기 의병대장은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찬한 <기려수필>에 기재되어 전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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