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그 눈을 외면해 버렸네
시와 함께하는 세상-그 눈을 외면해 버렸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2.12 15:59
  • 1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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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그 눈을 외면해 버렸네

어쩌자고 저녁 고속도로로
내몰렸을까
커다란 개 한 마리
중앙선 지지대에 바짝 붙어 간신히
간신히, 네다리를 지탱하고 섰다.

순진한 눈망울
금방이라도 툭, 물기가 떨어질 것 같다.
나도 멈출 수 없었다.
표정 없는 사람을 태운 차들은
밤이 오기 전에 어서어서 집으로 들기 위해 달렸다.

자동차 속력에 몸이 흔들리는 짐승은 나무처럼 붙박여
그런 우리를 이해하는 듯했다.
속도보다 어둠이 더 두려웠는지
짐승의 두 눈이 잔뜩 겁을 먹고 있다.

짧게 마주쳤을 때
나는 그 눈을 금방 외면 해버렸다.

꿈속에서
나도, 밤의 고속도로 한가운데로 내몰렸다.

(이미화, ‘귀가’)


사람이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기호지세(騎虎之勢)인 상황 정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귀가》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말하고 있다. 늦은 저녁 시간 일을 마치고 시인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고속도로를 지나고 있는데, 뜻하지 않게 개 한 마리가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에 갇혀 있었다는 것이고, 자동차들이 너무 많이 지나가다 보니 그 개 밖으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는 상황이다. 어두운 거리 날씨도 쌀쌀했을 것 같다. 추위와 어둠과 쏜살같이 달리는 자동차들의 위협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것이고 그 광경을 목격한 시인의 눈에는 개의 눈망울에서 마치 그 공포에 의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개도 감정이 있는 것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구별할 줄 안다.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자신을 구원해 달라는 간절한 부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구해 주는 운전자가 없다. 아시다시피 운전자들이 구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더구나 모두 귀가를 서두르고 있는 상황도 상황이지만 고속도로에서 함부로 차를 세웠다가는 더 큰 위험을 부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상황이 진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이다.

이러한 처지에 갇혀서 나무토막처럼 흔들리는 가엾은 개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하지만 시인도 결국은 눈을 질끈 감고 귀가를 하고 말았다는 실제 상황에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게 된다. 그것은 자동차를 타고 잠깐 지나와버린 짧은 상황이었지만 트라우마(Trauma)가 되어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생존의 본능 앞에서 굳이 인간은 선하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을 따질 것도 없이 선을 추구하는 시인의 처지에서 본다면, 당연히 양심의 가책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전반적으로 우리 주변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실을 특별한 메타포(metaphor)를 동원하지 않고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상황을 풀어가고 있다. 우리는 가끔 양 갈래에서 길에서 선택해야 할 상황을 맞이할 때가 종종 있다. 그 선택의 결과를 두고 평범하다, 비범하다는 구별할 척도로 삼고 있다. 독자들이여 당신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잠자리에서 가위눌림을 당하는 상황이지만, 인간적인 선택을 한 시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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