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보훈 이야기-3‧1절 의미를 되새기며
따뜻한 보훈 이야기-3‧1절 의미를 되새기며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2.26 16:0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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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호/경남서부보훈지청 보상과
박상호/경남서부보훈지청 보상과-3‧1절 의미를 되새기며

지금까지 매년 3월 1일이면 독립기념관이나 세종문화회관에서 3·1절 기념식을 열었고, 지방은 광역시·도 혹은 시·군 및 면 중심으로 공공장소나 학교에서 3·1절 기념식을 개최 해왔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부터 수십 년간 3·1절 기념식에 참가했다.

그러나 1919년 3월 1일에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유관순 열사가 순직했다는 것 외에는 딱히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나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특히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다수의 행사가 취소될 것이므로 신문기고로나마 독자 여러분께 3‧1절을 알리고 다함께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3‧1독립만세운동은 외세의 침략이 시작되던 구한말부터 힘없는 백성들이 인내해 온 응어리진 고통과 서러움의 폭발이었다. 비록 독립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독립의지와 독립의 당위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으며 세계독립운동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대규모적 만세운동이었고 무자비한 무력과 탄압 아래서도 평화적이고 비폭력으로 전개된 저항운동이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독립운동은 중국의 5‧4운동과 인도 간디의 비폭력‧불복종 운동, 이집트의 반영자주운동, 터키의 민족운동 등 아시아와 중동 지역 민족운동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3‧1독립운동은 우리나라 국내의 정세 및 외국에 많은 변화를 유발하였다.

1919년 4월 10일 상해에서 각 지역의 독립운동가 대표 29명이 회의를 열어 논의 끝에 나라이름은 대한민국, 운영체제는 민주공화정체제를 갖춘 임시정부를 결성했다. 그동안에 줄곧 논의되었던 내용들이었으며 회의는 다음날까지 계속되어 4월 11일 제헌헌법에 해당하는 대한민국 임시헌장이 제정되고 대한민국의 임시정부가 수립된 것이다. 또한 중국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우리나라 3‧1독립운동은 중국 인민 특히 중국 청년들을 고무시켰으며 당시 중국 진보언론의 열렬한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이러한 3‧1운동은 세계적 거사로서 우리 국민들이 어렵게 살면서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투쟁한 희생정신의 구국결사였고 시민혁명이었다.

기미년 삼월 일일 정오/ 터지자 밀물 같은 대한 독립 만세/ 태극기 곳곳마다 삼천만이 하나로/ 이 날은 우리의 의(義)요 생명이요 교훈이다/ 한강 물 다시 흐르고 백두산 높았다/ 선열하, 이 나라를 보소서/ 동포야 이 날을 길이 빛내자

3‧1절 노래 가사이다. 코로나19로 3‧1운동에 대한 기념의식이 희미해진 요즘, 3‧1절 노래가사를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잠시나마 3‧1운동을 기념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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