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자가당착
아침을 열며-자가당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02 15:1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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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자가당착

‘자가당착(自家撞着)’이란 말이 있다. 같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어긋나 서로 맞지 않고 모순되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과 자가 하는 행동에 스스로 우쭐하니 도취되어 기염을 토하며 호기롭게 위세를 떨다가 결국 실패하고 마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아무리 선한 의지(意志), 바람직한 방향(方向), 훌륭한 목표(目標), 올바른 방법(方法)을 취하였다 하더라도 마지막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런 의지, 방향, 목표, 방법은 어리석은 조롱거리로 되기 쉽다.

예컨대 의과대학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여 수제자로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 등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마스터 한 의사가 있었다. 그의 스승이 그에게 최초의 수술을 맡겼다. 그는 스승과 동료와 후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능수능란하게 수술을 마치고 자랑스럽게 수술실을 나왔다. 동료와 후배들이 박수를 쳤다. 스승이 물었다. “수술은 어땠어?” 제자가 뿌듯하게 답했다. “예, 선생님,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선생님 교재대로, 그리고 우리가 실습 한 대로, 보셨던 바와 같이 완벽하게 수술을 끝냈습니다” 스승이 물었다. “그래 보았네, 매우 잘했어. 그래 환자 상태는?” 제자가 답했다. “죽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현실의 사회문제는 학교의 교과서대로만, 선생님 말씀대로만, 지향하는 이념과 의지대로만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빗댄 이야기이기에 인용해 보았다.

지금 온 나라를 불안하게 하고 온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코로나 19사태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 우리 정부와 국민들이 혼신(渾身)의 힘을 다하여 노력하고 있기에, 이 사태는 곧 진정되리라 본다. 우리는 그런 희망과 믿음을 갖고 싶고 가져야 하고 또 갖고서 행동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3월 1일 오후 7시 현재 한국발 여행객의 입국을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국가가 81개국으로 늘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불과 몇 주 전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바이러스 청정지역이고, 몇 안 되는 바이러스 확진자들을 충분히 보살필 수 있으며, 바이러스를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지난 2월 13일 대통령도 바이러스 ‘종결 선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내어놓기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언론은 은근히 중국의 비민주적 정보통제와 의료대응 후진성을 꼬집었으며, 요코하마 항구에 정박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한 일본의 태도를 한심스럽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기생충의 오스카 상 수상, BTS의 명성, 손흥민의 활약, 여성 골퍼들의 성적, 조선제조업의 부활, 삼성폴더폰의 호평 등을 쏟아놓으며 자긍심을 높였다.

그러나 이러한 자화자찬의 선전 속에 차 있을 때 바이러스는 은밀히 그러나 신속하게 지역사회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드러난 몇 명의 확진자들에 집중하여 관심을 쏟는 사이 바이러스는 보이지 않는 구석을 더 깊게 더 광범위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바이러스에 허(虛)를 찔린 셈이다.

그리고 이제는 급기야 이웃이라 철석같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라들조차 우리나라를 바이러스 취급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냉정한 국제관계의 실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국제관계는 냉정한 이해관계이지 이념적인 선린관계만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다렸다는 듯 야당과 언론들은 우리나라 외교력의 허점을 공격하고 있다.

작금 이렇게 빗장문을 걸어 잠그는 세계의 나라들을 보면서 우리는, 더 꼬집어 우리 정부는, 모든 일에 있어서 실사구시의 과학적 자세보다는 자가당착의 환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더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도 든다.

그나마 희망적인 징조는 호주 당국이 1일(현지 시간) 한국에 대한 입국 제한 조처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발전된 의료 시스템과 투명한 정보 공개”라고 밝힌 점이다.

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반전(反轉)의 저력(底力)을 보여준 그동안의 우리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번 코로나 19사태도 너끈하게 극복하리라 본다. 자가당착의 어리석음을 넘어 오히려 세계사람들이 우리를 찬탄하며, 롤모델로 삼을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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