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놀라운 날이다
시와 함께하는 세상-놀라운 날이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04 16:1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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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놀라운 날이다


내 손에 화상을 입은 몸들이
눈을 뜨는 뜨끔한 날이다

내 말에 덴 마음들이
와글와글 문을 긁는 이명(耳鳴)의 날이다.

개구리를 잘못 만지면
화상을 입힐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후
내 시청각에 생긴 이상 징후들

몰래 다가오는 손길에
등이 뜨거워지고 목이 타고
냉가슴 팔딱팔딱 뛰기까지 하는
놀라운 날이다

(최석균, ‘경칩’)

오늘은 24절기 중 하나인 경칩(驚蟄)이다. 예로부터 입춘 이후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니까, 농부들은 농사 준비를 하고 젊은 청춘들은 사랑을 시작한다는 속설이 있는 날이다. 무엇보다도 얼어붙었던 몸이 풀리고 동면에 들었던 동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날이기도 하는 의미 있는 날이다. 마침 내가 알고 있는 지인 중에 경첨과 관련된 시가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개구리는 변온(變溫)동물인지라 겨울잠을 자는 동안 체온이 영하로 내려간다고 한다. 그래서 막 겨울잠에서 깨어난 직후에는 체온이 상당히 낮은 상태이기 때문에 36.5도의 체온을 가진 인간의 손으로 만지면 화상을 입을 수도 있다.'라는 점을 생각해 두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시인은 어릴 적 개구리의 변온성을 잘 몰랐던 어린 시절 개구리를 함부로 만졌다는 것이고 나중에야 개구리의 신체적 특징을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개구리를 함부로 만졌기 때문에 개구리는 화상을 입고 놀랐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죄밑이 되어 놀란 개구리들이 와글와글한다는 이명(耳鳴)이 생겼다는 것이다. 정말 시인다운 발상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독자의 시각에서 이 시를 달리 재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시인의 겸손에서 우러나오는 자기성찰의 의미를 가진 말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겠지만, 시인은 내 손에 화상을 입은 개구리 대신 내게 본의 아니게 나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화상)를 입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사람들의 원망 소리가 와글와글 들리는 것 같다는 의도로도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폴 발레리(Paul Valéry)도 말하지 않았던가. 시를 쓴 사람은 시인이지만 시를 해석하는 사람은 독자들이라고…개구리의 생체를 말했든,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말했든, 뜨끔한 날, 이명이 울리는 날 등의 표현에서 독자들은 다양하게 시를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와는 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예로부터 경칩이 되면, 청춘남녀들은 은행나무의 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서로 간에 사랑을 확인하거나 날이 어둑해질 무렵 마을 어귀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가 있는 은행나무를 돌면서 그 사랑이 계속 이어지기를 기원했다는 풍습도 있었으니,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통 밸런타인데이(Valentine's Day)라 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청춘남녀들은 다른 사람의 손길이 그리워지고 그 손길로 등이 뜨거워지고 목이 타는 현상과 더불어 가슴까지 쿵쾅거리게 되는 것이 아주 놀라운 날이 되기도 하는 날이라고 하면 너무 빗나간 것일까.

어째든 최석균 시인의 한편의 시를 두고 다양하게 해석을 해볼 여지가 있다는 것을 언급한 것이다. 독자제위께서도 나름대로 다양하게 재해석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을 빌미로 대인관계에서 지켜야 할 배려라든지, 그리고 우리가 미처 잊고 있었던 우리의 풍속이라든지, 따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경칩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날 최시인의 시를 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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