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삼매 개화, 아무리 추워도 봄은 왔다
산청 삼매 개화, 아무리 추워도 봄은 왔다
  • 양성범기자
  • 승인 2020.03.12 18:02
  • 1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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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이겨내고 은은한 향기 뿜어 선비의 지조 상징
▲ 산청 시천면 산천재 남명매

봄이 점점 빨라지는 가운데 선비정신 담은 산청3매가 지난 2월 말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를 시샘하듯 봄비와 꽃샘추위에 더해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치며 지역경기와 사람들의 마음마저 얼어붙었지만 결국 봄은 왔고 오랜 세월 풍파를 견딘 고목도 따스한 햇빛에 꽃을 피웠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은은한 향기를 뿜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매화는 선비의 지조를 상징한다. 산청의 선비들이 심었다는 산천재의 남명매, 단속사지의 정당매, 남사마을의 원정매 산청3매는 정신의 맑은 향기를 뿜어내며 봄철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산청군은 역사적 보존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매화나무 남명매, 정당매, 원정매가 잘 자라도록 수형조절과 고사가지 제거, 살아있는 나무의 부패부 제거 등 외과수술 등을 실시하기도 했다.

◆산천재 남명매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山天齋)의 뜰에 위치한 남명매(南冥梅)는 450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매화나무로 실천 유학의 대가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 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년(1561)에 후학 양성을 위해 지금의 시천면에 산천재를 짓고 난 뒤 직접 심었다. 밑에서부터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 줄기는 뒤틀려서 위로 뻗어 올랐다.

이 매화나무는 선비의 의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룰 만큼 호남학파의 수장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사간원과 대사간에 이어 영의정에 추서된 위인이다.

남명 선생은 1501년(연산7년)에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나아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다가 그 후 의령, 김해, 삼가 등지에서 거주했다. 선생은 61세가 되던 해에 산청의 덕산으로 이주해 그곳에 서실을 짓고 산천재라 했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으로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산천재의 당호로 ‘산천(山天)’ 이란 말은 주역 대축괘(大畜卦)의 ‘강건하고 독실하게 수양해 안으로 덕을 쌓아 밖으로 빛을 드러내서 날마다 그 덕을 새롭게 한다‘는 말에서 뜻을 취한 것으로 강건한 기상과 독실한 자세로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깊숙이 묻혀 심성을 도야하고 올바른 수양을 하는 것이 학자의 길임을 천명한 것이다.

한편, 산천재의 정원의 끝 강쪽 언덕에는 남명매보다는 뒤에 심었을 것으로 보이는 크고 작은 매화나무가 서 있다. 또 산천재의 바깥뜰에는 수형이 아름답고 크게 자란 활엽상록수인 가시나무가 여러 그루 서 있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산청 단성면 단속사 정당매
산청 단성면 단속사 정당매

◆단속사 정당매
단성면 단속사 절터에 위치한 정당매(政堂梅)는 고려 말 대사헌과 정당문학을 지낸 통정 강회백(通亭 姜淮伯, 1357~1402)이 선생이 어린 시절 단속사(寺)에서 공부하던 중 심었다.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고목에서 핀 꽃 색깔은 백색이 홑꽃으로 오랜 세월을 견딘 흔적이 역력하다.

산청의 3매 중 유일하게 1982년 경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이 나무는 수령이 640여년에 이르렀지만 노거수로 수세가 좋지 않아 2013년 가지 일부를 접목으로 번식했다. 이후 2014년 완전 고사된 정당매 옆에 후계목을 식재해 관리하고 있다.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通亭)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해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됐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都巡問使)가 됐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才德)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해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했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했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됐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됐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해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梅閣)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政堂梅閣)’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政堂梅閣記)'와 통정공의 매화원운(梅花原韻)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산청 단성면 남사예담촌 원정매
산청 단성면 남사예담촌 원정매

◆남사예담촌 원정매
단성면 남사예담촌 마당에 자리하고 있는 원정매(元正梅)는 고려말 원정공 하즙(河楫, 1303~1380) 선생이 심은 것으로 그의 시호가 원정(元正)이었던 데서 비롯됐다.

홍매화로 산청 3매 중 가장 오래된 수령 670여년을 자랑했지만 원목은 2007년에 고사하고 후계목이 뿌리에서 자라 매년 꽃을 피우고 있다. 원정매 앞에는 자그마한 매화시비가 있다.

남사마을(남사예담촌)은 약 500여년 전에 형성된 마을로 조선시대 의 전통적인 양식을 갖춘 고택이 여러 채 있고 오래된 마을답게 회나무의 고목이 여러 그루 솟아 있다. 이 마을에는 매화의 고목이 많기로도 유명하다.

이 마을의 고택 중 하나로 진양하씨가 32대째 살아온 ‘분양고가’가 있다. 이 집은 원정공(의를 행해 백성을 기쁘게 함이‘원’이요, 정의로써 남을 복종케 함이‘정’이라는 뜻) 하 집(1303~1380)이 살았던 집이다. 그는 21세 때인 1324년에 진사를 거쳐 문과의 갑과에 3등급으로 급제해 경주부윤과 문화찬성사를 거쳐 수충좌리공신중대광보국숭록대부진천부원 군에 이르렀다.

이 집은 동학란 때 소실된 채 지금은 그의 31대 손인 하철이 새로 집을 지어 ‘汾陽古家’라는 액자를 걸어 놓아 옛 명문가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 원군의 ‘원정구려’라는 친필액자가 보관되어 있는 사랑방 앞에는 610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잘 생긴 소나무와 함께 어울려 있다. 이 매화나무는 고려 원정공 하집이 심은 것으로 등걸은 고매로서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이 집 뒤뜰에는 조선조 세종때 영의정을 지낸 하연이 손수 심었다는 600여년 생의 감나무도 있다. 양성범기자·자료제공/산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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