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작은 것들의 존재감
아침을 열며-작은 것들의 존재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16 14: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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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
이준/선거연수원 초빙교수·역학연구가-작은 것들의 존재감

‘코로나 19’로 인하여 온 세상이 뒤숭숭한 요즘 이런 생각도 든다.

작은 것들이 핵심(核心)인 세상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전자현미경으로 겨우 발견할 수 있는 작디작은 바이러스가 막강한 무기를 구축하여 온 세계를 집어삼킬 듯 위세를 떨치는 온 세계의 막강한 나라들을 뒤흔들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막강한 무기체계, 아무리 위대한 우주선의 비행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의 점하나, 그 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전자알갱이의 동작이 없으면 그런 무기체계나 비행선은 무용지물이 된다. 만에 하나 그 프로그램의 점하나 전자알갱이의 작동이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무기나 비행체는 오작동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당연히 결과는 치명적으로 불 보듯 뻔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행복과 불행, 국방과 경제, 교역관계와 문화, 생명 연장 및 국제관계 등에 있어서도 작은 것들의 변화 조짐이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바야흐로 ‘작은 것들의 시대’가 되고 있다. 아주 작고 미세한 것들이 아주 크고 복잡한 시스템의 핵심인 시대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시대변화를 보면서 새삼 130여 년 전의 일부 김항 선생의 하늘과 땅과 사람을 바라보는 예언적 관점에 대하여 새삼 존경의 마음을 갖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무토(戊土)의 세상에서 기토(己土)의 세상으로 바뀌는 것을 말한다. 상극의 지배복종에서 상생의 조화배려 봉사의 세상으로 천지가 개벽되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위대하고 장대한 권세의 시대는 사라지고, 작고 보잘 것 없는 꼬래비가 세상의 끌개가 되고 흐름을 주도하는 선두가 되는 세상임을 그는 간파하여 주장하였다. 이른바 십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있으면서 흔적도 이름도 없이 파묻혀 지내던 기토(己土)의 세상이 된다는 것을 말했다, 지금 들어 이런 점들은 세상의 곳곳으로부터 점차 현시화(顯示化)되고 있다. 즉 ‘갑을병정 무(戊)기(己) 경심임계’라는 오황극(五皇極)의 중심 깃발의 세상에서 ‘기(己)경심임계갑을병정무(戊)’라는 둥근 원의 세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이 세상의 어떤 특정 한 곳이 중심지역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곳이 세상의 중심자기 되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위치에서 세상의 키워드(keyword)가 되며,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저마다의 생성소멸이라는 시간 안에서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관점이다. 어느 특정 거대세력이 어떤 국가나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모든 작은 힘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집단적 이성을 형성하고, 집단적 권력망을 구축하여 하늘과 땅의 리듬과 흐름에 순응하며 운행한다는 사상이다.

새로운 세상은 영웅호걸(英雄豪傑)들이 중심이 되는 세상이 아니라, 장삼이사(張三李四) 평범한 민초(民草)들이 그때그때 마다 만들어내는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이다. 지난날에는 절대지존의 절대권력 앞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아무 변명도 하지 못한 채 이리 채이고 저리 부대끼면서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마음의 한(恨)을 풀지 못하고 억울하게 살다가 죽어 간 경우가 많았다. 반면, 새로운 세상이 되면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한을 풀고, 서로를 도우면서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이상향(理想鄕)]을 말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사람들의 문화적 감수성과 신경망처럼 연결되는 정보망의 구축으로 세계의 모든 사람은 서로 적대적 관계보다 상호 도와주는 관계로 진일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도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주인공 되고 영웅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민주주의 기틀은 어느 정도 그 방향성을 찾아가고 있는 반면 아직까지 경제적 민주화에 있어서만은 이러한 조짐들을 발견하기 어렵다. 오히려 미국, 중국, 일본 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도 부의 집중화(集中化) 내지 극점화(極點化) 현상이 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빈부격차, 갑질문화, 상대적 빈곤과 박탈감, 체념의식 등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경제 불균형의 가슴앓이 현상에 대하여 이제 사람들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본다. 아무리 거대하고 화려한 권력을 예찬하는 빗돌이라 할지라도 받침돌 없이는 제대로 설 수 없듯이, 눈으로 당장 보기엔 난공불락(難攻不落) 불패(不敗)의 재력처럼 보일지라도 작은 소비자가 없으면 그 또한 사상누각(沙上樓閣)이 아니겠는가.

이제 시대는 추상적 화려함에서 구체적 실질 쪽으로 바뀌고 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보다 햇살 한 줌이 더 소중하고, 공해를 내뿜는 값비싸고 멋진 자동차보다 신선한 공기가 더 절실한 점을 일깨우고 있다.

이와 같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는 거대한 담론보다 우리 주변의 작고 실질적인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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