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고경숙의 소설 ‘별들의 감옥’
아침을 열며-고경숙의 소설 ‘별들의 감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24 15: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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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소설가
강영/소설가-고경숙의 소설 ‘별들의 감옥’

고경숙 작가의 소설집 <별들의 감옥>을 읽었다. 소설집에는 모두 11작품이 실려 있는데 그중 가장 당기는 표제작이기도 한 <별들의 감옥>을 먼저 읽었다. 참 편안하게 읽히는 맛을 모처럼 즐기며 읽었다. 마치 올바르고 성실하게 현실을 잘 살아낸 이모가 옆에서 조근조근 어려웠던 시절 옛날이야기를 해주는 걸 듣는 편안함이었다. 작가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걸맞게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부분들을 독하게 나무라지도 않으면서 이래서는 안 된다 하신다.

화법이 편안했다고 소설의 내용이 편한 건 절대 아니다. 편하기는커녕 불쾌하도록 불편한 얘기다. 특별히 <별들의 감옥>은 우리 사회의 가장 고질적 문제인 교육을 말한다. 정말이지 이상하게 갈수록 꼬여만 가는 교육 문제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풀어야할지 난감하다. 난립한 사교육에 휘둘리는 공교육과 학생과 학부모는 진짜 어찌할 수가 없다. 학원을 안 보내자니 불안초초 하고 보내자니 만 가지가 걱정이고. 학습지나 방문 학습도 사정은 매 한가지다.

<별들의 감옥>은 서울 8학군을 무대로 하고 있다. 개봉동에서 살다 대출을 받아 살곳을 장만하고 8학군으로 이사를 온 중학생 승재네 이야기다. 애초 이사를 오게된 동기는 승재 엄마의 한풀이교육열 때문이었다. 고졸인 승재 엄마는 아들만큼은 무슨 수를 쓰서라도 번듯한 대학으로 진학하기를 바라는 우리들 자신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읽고 나서는 더욱 승재가 이왕 8학군에 진입했으니 소원대로 번듯한 대학엘 진학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이유다.

소설은 승재의 최초의 도둑질로 시작한다. 최초의 도둑질은 대개 엄마의 지갑을 뒤지는 것으로 시작하게 마련이다. 만만한 게 엄마니까! 승재 역시 평범한 중학생답게 예상을 뒤집지 못하고 엄마의 지갑을 뒤지다 다행히 엄마에게 들켜 더 다행하게도 혼쭐은 아빠에 당하고 새출발하는 이야기다. 가장 다행스러운 건 아빠의 적절한 혼쭐에 승재가 범행할 수밖에 없었던 동기를 고백한 것. 친구의 비싼 물건을 망가뜨렸고 그 값을 치르느라 한 범행이었던 것이다.

평범함, 이것이 이 소설을 읽는 편안함을 준다. 고졸 때문에 갖는 승재 엄마의 열등감, 나이 오십도 되기 전에 명퇴당하는 승재 아빠. 그들이 실어 나르는 얘기도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명퇴를 당하고 숨기기와 뽀록나기와 대출 이자 갚기 위해 새벽 배달 일하기까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평범한 문제가 가장 풀기 어렵고 무거운 교육문제다. 풀 방법은 없고 더 깊이 꼬여가기나 하고 풀기는 해야하니 말로만 너무 많이 논의가 되어 이 지경이 된 듯하다.

아쉬운 점도 있다. 이야기는 승재의 이야기인데 결정적 결말사건은 승재 친구가 담당한 것이다. 친구가 담당을 하려면 친구의 이야기가 승재와 함께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있어야 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지면상 충분한 독후소감을 다 적지 못한 점이다. 작품도 작품이지만 고경숙이라는 고귀한 작가에 대해서 얘기하지 못한 일이 진정 아쉽다. 군부독재와 맞섰던 도도한 ‘민주화시기’의 그 질긴 그늘을 오롯이 살아낸 일은 후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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