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국민은 알고 있다
칼럼-국민은 알고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24 15:5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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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
황규홍/김동리 다솔문학 협회 회장ㆍ시인ㆍ작가-국민은 알고 있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관료들은 영혼이 없다’고 했다. 승진시켜주고 좋은 자리 보내주는 인사권자 앞에서 관료가 약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요즘 한국 관료들은 영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판 것 같다. 정권의 총대를 메고 나서서 적극적으로 영합한다. 물론 보상을 기대할 것이다. 공정으로 혁신과 포용을 이끌겠다던 대통령 연설은 허공으로 흩어졌다.

청와대의 거듭된 오판과 실기(失機)가 국정 위기를 증폭시킨 건 명백한 사실이다. 2020년 총선의 해, 국민이 현명하게 선택하는 길밖에는 없다. 2020년 우리 국민은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나라의 진로를 다시 정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고빗길마다 선택을 해왔고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됐다. 큰 흐름에서 현명한 선택을 해왔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이번에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의미는 남다르다.

올해 총선을 1988년 13대 총선과 같은 정초선거(定礎選擧)라고까지 한다. 선거 결과가 앞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과 미래를 결정짓는다는 뜻이다. 이번 선거는 과거 어느 선거보다 격렬한 형태로 결정될 것이다.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에 역행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공수처)를 검찰 개혁의 상징으로 고집하는 대통령의 억설(臆說)도 적대 정치의 산물이다. 적대 정치는 분할 통치(divide and nule)에 의존한다. 의관지도(衣冠之盜, 관복 입은 도적 떼) 얼마 전 현 정부의 비리를 수사하는 검찰을 무력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켜놓고 국회의사당에서 희희낙락 사진을 찍어대던 여당 의원들 모습에서 글을 시작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대통령이 예고했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와 실제 맞닥뜨려야 했다. 엄청난 포플리즘 세금 공세, 초유의 저성장, 반기업 정책, 탈원전 자해극, 고용 참사, 민노총 폭력, 교실 내 좌파 정치교육, 정권의 선거 공작, 실세들의 비리 은폐 등 벌어질 수 있는 일은 다 벌어졌다.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광화문과 서초동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이 몰려나와 정반대 구호를 외치면서 대립했다.

나라가 분열된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나라가 완전히 두 동강 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주말마다 거리에서 격렬하게 맞부딪치는 민심의 충돌을 “국민분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로 다른 국민의 뜻을 대변하며 통합의 장(場)이 돼야 할 국회에서 총선거를 통해 나라의 진로를 다시 정한다. 우리는 크고 작은 고빗길마다 선택을 해왔고 그것이 우리의 역사가 됐다. 국회에서 여야는 내내 평행선을 그렸다. 민주주의의 경쟁 규칙을 정하는 선거법과 나라의 형사사법 시스템을 새로 짜는 공수처법마저 극단으로 치달았다. 나라의 기본 틀을 정하는 두 번을 여당과 일부 군소 정당이 제1야당을 따돌린 채 강행 처리하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졌다.

집권 반환점 넘어 문 정부의 통치 헤게모니가 치명적으로 균열되고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면 국가 안보 차원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에 따라 나라를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 불행히도 한국은 문 대통령이 어떤 안보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그림이 있는가조차도 모른다. 문 대통령의 그림이 있다면 거기에는 북한과 김정은이 있을 뿐이다. 미국은 계속 혀를 차고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도와주려는 북한마저 온갖 욕설과 모욕적 언사로 자기를 걷어차고 있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이 좋은 나라이거나 나쁜 나라이거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혼자 설 자신이 없고 그럴 여건도 아니라면 미국이 차선이다. 문 대통령이 조국 사태를 수습할 기회는 많았다. 조 전 장관 사퇴까지 무려 68일간 지속된 통치 헤게모니 악화 과정은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러나 조국 사태의 밑바탕엔 문 대통령의 무능보다 훨씬 심각한 통치 패러다임의 구조적 위기가 자리한다. 정치를 적과 동지의 이분법으로 나누어 궤멸시키려는 적대 정치가 그것이다. 문재인 정권의 적대 정치는 야당과 비판 세력을 정치적 경쟁자로 보지 않고 척결해야 할 적(敵)으로 여긴다. 스스로 진리와 정의 사도라고 확신한다. 문 정권은 줄곧 적대 정치의 형태를 보여왔고 조국 사태는 그 필연적 귀결이다. 시민들의 분노에도 문 대통령의 진솔한 사과를 거부하는 본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통령 비서실, 왜 범죄자 집합 처가 돼버렸나? ‘트럼프 비서실’보다 100명이나 많은 ‘문재인 비서실’ 충성심 밖에 없는 비서실은 퇴임(退任) 대통령 안전에 치명상 입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은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사고를 많이 치는 비서실이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각종 사건의 주범(主犯)과 종범(從犯)은 거의가 청와대 비서들이다. 정권 출범 초기부터 드루킹 여론 조작 사건을 비롯한 각종 범죄에 비서실이 끼지 않은 데가 없다. 울산 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는 비서실장·비서관·행정관이 모두 출연했다. 뇌물 받은 것이 확인됐는데도 출세가도(出世街道)를 승승장구한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에는 수석비서관 및 비서관과 대통령 실세 측근 여럿이 나와 경연(競演)을 벌이고 있다. 대통령은 조국을 택한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믿는 것 같다. ‘윗선’은 누구인가로 쏠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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