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나의 꿈 나의 소망어쩌다 문학단체에 문학상이나 신인상 시상식에 참석해 시집과 수필집들을 받아오면서 맘 한편으로는 책을 내는 작가 분들을 한없이 부러워했던 때가 새삼스럽다.
나는 남들처럼 농토도 변변치 못하며 따로 벌려놓은 부업거리 하나도 없으면서도 막연하게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맘으로 젊은 시절을 어영부영 살았다. 아버지께서 늘 가훈처럼 하셨던 말씀이 ‘농자는 천하지 대본’ 이셨다. 자연스럽게 농사가 삶에 대 근원이며 나의 철칙이 되어버린 것이다.
서른 나이가 다 되도록 풀을 베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며 땅을 열심히 팠었다. 그러나 결국 서 있는 자리는 한 발자국 전진 되지 못한 다람쥐 쳇바퀴 돌리는 처지였다.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술 마시는 재미에 매료되다 보니 초등학교 때 꿈인 시를 쓰고 글을 쓴다는 것은 감쪽같이 잊고 살았다.
시골 촌구석에 살던 우물 안 개구리가 피치 못할 집안 사정으로 서른이 다 되어 무작정 서울에 올라갔을 때는 가진 돈도 없었다. 기술을 가진 것도 없었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많이 배우지 못했으니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다. 용케도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지만 무(無)에서 유(有)를 이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녀를 낳고 학교에 보내고 결혼을 시키고 손자 녀석들을 얻은 후에야 삶의 뒤안길을 돌아봤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시를 쓰고 글을 쓰는 꿈인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아내는 날마다 쌍둥이 녀석들하고 씨름을 할 때, 나는 컴퓨터를 붙들고 씨름을 했다. 인터넷 문학 카페를 대하면서 작품공모를 한다는 광고에 맘이 설렜다. 내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 글을 써서 보내고 시를 써서 보냈다. 내가 보낸 작품이 당선되었다고 축하한다는 전화를 기다리면서 나는 보랏빛 꿈속에 빠져들었다. 주택복권을 사는 날부터 1등 당첨이란 기대 속에 발표하는 날까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신춘문예 당선이란 수천수만 응모작 중에 딱 한 사람 영예가 돌아가는 것을 졸작을 응모해 놓고선 내가 보낸 시가 모 신문사에 당선되면 당선 소감을 어떻게 쓸까 하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발표 날까지는 당선은 떼 놓은 당상처럼 기대하고 있다가 막상 발표 날이 되면 높은 벼랑에서 떨어지곤 했다.
이렇게 이태를 신춘문예에 도전했다가 원인 분석에 나서게 되었다.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읽어 보았다. 소감을 발표한 당선자들은 ㅇㅇ대학, 문예창작과의 지도해주신 ㅇㅇ교수님께 감사드린다는 당선소감들을 읽어 보고서야 나의 교만함을 깨달았다. 다들 글쓰기를 한 연한과 경력은 화려했다. 문학을 전공하기도 하고 문학 교실에 나가 실력을 쌓아 온 사람들의 당선 소감을 읽으면서 나의 끌 쓰기 실력으로 신춘문예에 문을 두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아예 신춘문예 응모는 생각도 안했다.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지 않으니 요즘은 신춘계절이 와도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자유롭지 못한 경제난으로 문학단체 활동비 마련은 고사하고 원고만 산더미처럼 써 놓고선 책을 낼 수 없는 바로 나와 같은 안타까운 문학인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어느 땐가부터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의 손을 떠난 책들 대신 휴대용 전화기가 들려 있는 세상이다. 시나 수필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지만 한권 또 한권, 책을 내는 것이 자식을 낳아 길러서 출가를 시키는 맘이라 재미도 쏠쏠하리라.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며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있다. 나의 육체는 죽어서 본향인 흙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내가 쓴 시와 수필 소설들이 책으로 묶어지면 내 이름은 남겨질 것이다.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원고들을 모두 다 책을 내는 것이 나의 조그마한 꿈이며 나의 소망이다.
가끔 내가 쓴 글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꿈을 꾸기도 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의 ‘꿈은 이루어진다’ 함성이 내 귓전을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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