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땡추가 맵지도 않고
시와 함께하는 세상-땡추가 맵지도 않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25 11:41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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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땡추가 맵지도 않고

읍내 우시장에 쇠전이 열리던 날
일소를 몰고 나간 아버지
저녁이 되어서 혼자 돌아왔다.

빈 외양간만 쳐다보던 어머니
저녁 찬으로 땡추 부침개를 부쳤다.
듬성듬성 썬 부추보다 총총 썬 땡추가 많았다.

탁사발의 막걸리는 술술 넘어가지만
목울대에 걸린 땡추 부침개는 되새김질만 하고 있다.
하나도 슬프지 않다는 당신만의 주법이다.

뚝뚝 흘리는 일소의 눈물을 보며
입맛마저 우시장에 두고 왔기 때문에
아버지는 땡추가 맵지도 않고
막걸리가 쓰지도 않다.

(김성진, ‘실업’)

오랜만에 성장기 때가 생각나게 하는 시다. 김성진 시인은 훤칠한 키에 미남형 얼굴에다, 심성이 좋은 사람으로 문자 그대로 외모와 내면을 두루 잘 갖춘 사람이다. 이 시를 읽으면 그가 왜 심성이 좋은지 알게 된다. 그 시절이면 대부분 그러했듯, 시인 역시 넉넉하지 못한 집에서 자란 것 같다. 아버지는 농부였고 농부에게는 일소 그 집의 모든 것이다. 그런데 그걸 팔았단다. 농부가 소를 판다는 것은 정말 막다른 길에 왔을 때의 이야기이다. 미루어 짐작하기에 소를 팔고 맨 정신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없어서 저녁 늦게서야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은 당연하다. 섭섭하기로는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쇠죽 끓이기야 아버지 몫이겠지만 아버지가 바쁜 날이면 어머니 역시 소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았을 것이다. 그러니 자식 못지않게 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그 당시 재산 목록 1호가 소였던 시대지만 소는 단순히 재산이 아닌 보통의 가족이었다. 그러니 어머닌들 마음이 편할까. 어쩔 수 없이 소를 팔아야만 했던 아버지의 울적한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고 그것을 매운 땡추로 눈물의 사연을 돌리려 했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울고 있는 남편의 마음을 배려한 것이니 당연히 부침개에는 부추보다는 땡추가 듬뿍 들어가야 했다. 그 아버지 저녁밥을 먹어도 목구멍으로 넘어갈 수가 없었을 것이고 대신 울적한 마음을 막걸리와 땡추로 대신 달래고 싶었겠지만, 안주로 삼은 땡추 부침개 역시 쉽게 목을 넘어가겠는가. 우시장에서 소와 이별할 때 눈물을 보이던 소가 눈앞에 어른거려서 아버지 역시 눈물이 안 날 수가 없었을 것이고 어머니의 배려 덕분에 땡추 부침개의 매운맛으로 눈물의 의미를 위장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아버지는 땡추의 매운맛도 시원한 막걸리 맛도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시인은 그처럼 따뜻한 가족애를 듬뿍 느끼면서 자라왔던 것이고 그 과정에서 사람 사는 법을 몸소 체득해오지 않았을까. 즉 따뜻한 심성을 가진 아버지 어머니 일소 등 주변의 모든 것들이 어릴 적 시인의 인격을 형성하게 해 주고 진작부터 시인이 될 수 있는 감성을 만들어 준 매개체가 아니었을까,

공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라고 정의를 내렸다. 즉 ‘시는 사람의 생각에 사악함을 없애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으며 그의 아들 공리(孔鯉)에게 시를 모르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고 했던 말이나, 나중에 그의 제자 남용(南容)을 조카사위로 삼게 되는데 그 이유가 남용이 학문이 뛰어나거나 훌륭해서가 아니라 시경의 ‘백규(白圭)’라는 시구를 좋아하여 매일 세 번씩 암송하자 조카사위로 삼았다는 것이다. 백규의 내용은 언행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는 내용인데, 이처럼 시는 인간에게 감흥을 일으키고 사물을 올바로 볼 수 있게 하면서 남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하며 잘못을 용서할 수 있게 하는 인격을 연마하는데 큰 바탕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시인의 시적 품격을 알려면 그의 시적 사조(思潮)와 더불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김성진 시인은 그런 면에서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시인으로 생각되며 독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오랜만에 추억을 살리게 해 준 소중한 시 한 편을 감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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