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화합(和合), 야합(野合)을 풀 다법(茶法)
도민칼럼-화합(和合), 야합(野合)을 풀 다법(茶法)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3.26 15:4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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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
김기원/경남과학기술대학교 명예교수·남강문학협회장-화합(和合), 야합(野合)을 풀 다법(茶法)

두 가지 단어에 각각 다른 뜻이 있다. 화합은 긍정 합리성이라 하겠고 야합은 부정. 비합리성이다. 하지만, 본래 뜻은 두 가지 이상 물질이 어울림 하는 행위를 총칭한 내용이다. 그 물질을 정상적인 과정, 비정상적인 과정 차이에 따라 화합과 야합으로 일반적 구분으로 통용된다, 사실, 따지고 보면 원칙과 비원칙의 원리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 간이 맞느냐, 안 맞느냐에 따라 맛 차이가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이 논제가 생활문화 전체를 대변하는 해석에 적응될지도 모른다. 사실 용어 해석에 따라 긍정적 긍정, 부정적 긍정, 부정적 부정, 해석 차이를 통하여 결론을 못 얻는 경우도 있다.

사회 질서를 우선하는 선(善), 악(惡)의 차이보다 구분 할 수 없는 경우 인간 지혜를 응용한 기계에 의존하는 판단사회를 문명사회, 고차원 사회, 인격화사회, 근래 Al사회라 칭하며 문화의 진화성을 첨부한 격찬이다.

우리가 즐겨 마시는 차 생활에 차(茶) 맛을 두고 맛있다, 맛없다는 팽주의 다법 절차에 따라 차 맛이 결정된다. 이 세상에 일어나는 사사건건 행위에 정상, 비정상 격차 풀이에 따라 다르게 결론될 경우는 원칙의 어울림을 배제시킨 결과이다. 원칙에 대항할 이론을 못 찾으며 부정을 낳는다.

<우바새계경>에 의하면 “단체가 파괴되는 것을 보았을 때, 화합(和合)을 요구했고, 남들의 착한 일은 칭찬하데, 타인의 잘못은 숨기며, 남의 부끄러운 일에 대해서는 결코 말하지 않으며, 남의 비밀을 들었을 때에도 말하지 않으며, 작은 은혜라 하지라도, 자신에게 베푼 자가 있을 때 크게 감사함을 생각하며, 자기를 원망하는 사람에게 항상 선심(善心)을 일으키며, 자신을 해치는 자와 사랑하는 자가 같은 고통에 빠져 있을 때, 해치는 자를 먼저 구하며, 욕하는 자를 만나면 오해가 없도록 이해시켜 욕됨 마음을 풀어주며, 싸움은 말리고 악을 일으키는 비심(非心)을 제치고, 부모를 모시듯 정성을 다하여 화합되도록 해야 한다”라 했다.

인간 사회는 생존경쟁, 강자와 약자의 투쟁, 공익성보다 사사로움이 존재함으로 화합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수록 화합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화합 이전을 존중하고 살피며, 마음 자세가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차를 마시는 다법은 균형 잡힌 나눔. 배려하는 분배의 평등화에 가르침을 주어야 한다. 곧은 것을 남에게 양보하고, 잘못을 이끌어 자기에게로 향하게 하면, 다툴 것 없어진다. 진정한 화합은 자기양보가 우선돼야 한다.

요즘 격돌하는 우리사회를 바라보면 한마디로 개싸움이다. 화합이란 용어로 국민을 인질로 잡는 쇠사슬로 활용한다. 겉으로는 국민을 앞세우고 국가를 위한 ‘화합’을 내세우면서 뒤로는 비열한 ‘야합’의 속성을 버리지 못하는 습생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국민은 코로나19 바이러스 공포로 격리 상태에 처해 있는데 국민을 대표한다는 살아있는 권력이라는 분은 자신에 유익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잘난 척한다. 자신에 머리카락만큼 불리하면 독사보다 강한 독을 품는 악마의 얼굴을 자주 본다. 왜, 저 꼴이 되었는지, 철딱서니 없는 철새 감투 꾼, 이리 떼같이 날뛴다. 국민이 잡아야 한다. 아픔과 흐트러진 민심을 끌어안을 수 있고 삶 희망에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겨들을 일을 생각하고 새로운 봄빛을 주었으며 좋겠다.

국민의 지도자가 되는 여러 요건에 공정된 이 여덟 가지로 국민의 한 풀이와 수호했으면 좋겠다. 첫째, 언행(言行)이 들어맞아 어긋나지 않음이다. 둘째, 소외계층 어른을 존경해 가벼이 여기지 않음이다. 셋째, 언어가 부드러워 거친 데 없이 책임성이 강해야 된다. 넷째, 자신을 낮추고 공손해서 늘 겸손의 미덕을 지님이다. 다섯째, 늘 질박(質朴)하여 아첨이 없음이다. 여섯째, 인화(仁和)를 닦아 비위를 맞추는 일이 없음이다. 일곱째, 인격화를 갖추진 악이 없음이다. 여덟째, 선근(善根)으로서 세상에 적응함이다. 작설 한 잔 마시며 사색하기를 조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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