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애인과 이별하면서
시와 함께하는 세상-애인과 이별하면서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0.04.01 16: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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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애인과 이별하면서

雨歇長提草色多(우헐장제초색다)
送君南浦動悲歌(송군남포동비가)
大洞江水何時盡(대동강수하시진)
別淚年年添綠波(별루년년첨록파)
 
(정지상, ‘送人’)
 
이번 주에는 송인(送人)이라는 한시를 한편 소개할까 한다. 인(人)이란, 사람 여기서는 사랑하는 사람 즉 연인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송인이란 현대어로 풀이하면 ‘애인과 이별을 한다’라는 말이 된다. 우선 전문을 풀이해 보면,
 
비 그치자 긴 강둑으로 풀빛은 다채로운데
당신과 이별을 해야만 하는 남포에선 슬픈 노랫소리만 요동치네요.
대동강 물은 어느 때나 다 마를까요.
(저렇듯) 해마다 이별의 눈물이 푸른 물결로 흘러가고 있는데요.
 
이 시는 12세기 그러니까 고려 중기 문화적으로 황금기였던 시절, 그야말로 문화의 꽃이 절정에 오를 때의 배경이 되는 시이다. 한 행에 일곱 자씩 4행시인데 이런 시를 칠언절구(七言絶句)라고 하는데, 먼저 시인을 소개해 볼까 한다. 정지상(鄭知常)은 고려 인종 때 벼슬을 지냈던 인물이지만, 권문세족들과 비교해 비교적 한미한 가문 출신이라, 높은 벼슬에는 오르지 못하였고 그러한 출신성분은 여러 번 출세의 걸림돌이 되었다. 후에 지금의 평양인 서경 천도를 주장한 묘청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오해로 참살을 당하게 된 사건은 지금까지도 능력보다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 시인의 슬픈 역사로 남아 있다.
 
이 시는 이별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시적 상황은 지금처럼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봄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풀빛이 생생한 대동강 둑 가에 있는 포구에서 전개된다. 서경 그러니까 오늘날 평양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나누던 두 연인이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남자로 짐작되는 사람이 서울 그러니까 오늘날 개경으로 떠나게 되는 내용 시작된다. 그리고 그 이별의 슬픔이 ‘당신과 이별을 해야만 하는 남포에서는 슬픈 노랫소리만 요동치네요’라고 하여 다소 과장한 면이 없지 않지만, 여인의 이별에 대한 아쉬운 상황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내용으로 시를 점층 형식으로 의미를 이끌어가고 있는데, 이를테면 슬픈 노랫소리가 요동치는 대동강 물은 원래 자연적으로 계곡 구석구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겠지만, 강이라는 경계지점을 두고 이별하는 연인들이 해마다 끊이지 않아서 그 연인들의 이별에 대한 슬픈 눈물이 대동강 물의 일정 부분을 차치하고 있어서 대동강은 마를 날이 없다는 논리이다. 대단한 비약으로 번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공감을 얻을 만하다.
 
이 시는 비록 정지상이라는 남성이 지은 시이기는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서정적 자아는 여성처럼 비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조선 시대로 본다면 황진이(黃眞伊)의 시 계통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어쨌거나 정지상의 이별가인 이 송인(送人)이라는 명작으로 후대에 많은 사람이 비슷한 작품을 써왔지만, 정지상의 <이별>을 능가한 작품이 별로 없다는 것이 학계의 정론이다. 참고로 1955년 현대문학지에 발표된 이수복 시인의 이별가를 소개하면서 마무리를 짓고자 하는데, 사별(死別)한 어느 부부의 이야기로 시적 흐름이나 배경이 〈송인〉과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외로이 서고

​임 앞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이수복, ‘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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